우리 민족은 꽃에 대한 많은 사연을 갖고 있다. 일제치하 김소월은 진달래꽃을 노래해 일제하에서 사라져 가는 민족혼을 일깨웠고, ‘ 봉선화야, 내 모습이 처량하다’로 시작되는 동요는 일제시절에 구구절절 온
2006년 04월 03일(월) 02:23 [경북중부신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도 일제하 식민의 설움을 노래한 시요, 현진건의 ‘메밀꽃 필 무렵’은 가난과 설움 속에서 살아가는 밑바닥 서민의 곡절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애간장을 녹여내는 조용필의 ‘ 꽃피는 동백섬에는 ’ 또 어떤가. 각 지역마다 특성을 지닌 채 민족혼을 울리는 ‘ 아리랑’도 구구절절 고개를 넘나들면서 피는 꽃을 바라보면서 읊은 서정시들이다.
꽃은 삶으로 치면 젊음이요, 결실의 서막이다. 그러나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십일 넘게 피는 꽃은 없다는 의미다. 세익스피어가 아름다움의 차이는 ‘ 10미리의 피부 두께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한 것처럼 영원히 갈 것 같던 꽃도 열흘이면 지고, 영원할 것같던 여성의 아름다움도 피부가 찌들리기 시작하면 외형적인 아름다움은 끝인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에 우리 민족이 울고불고 했던 것은, 일제 치하에서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을 가져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한(限), 꽃을 보면서 꽃이 질 것을 생각하며 그려보는 허무한 인생의 정서가 가슴을 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민족 정서가 밑바닥에 깔리는 가운데 수십년동안 독재 정치가 이어지면서 우리는 다시 꽃을 바라보며 기쁨보다는 애환에 젖어 살아야 했다. 민족 정서가 한의 정서로 자리를 잡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꽃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던가.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못하는 감정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지금, 우리는 봄꽃에 대한 정서적 변환기를 맞고 있다. 꽃 앞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거나 아름다움의 감흥에 젖어보는 정신적 여유를 갖게 되기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번 봄에는 만산에 핀 꽃을 보면서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성실히 최선을 다해 가을에는 알뜰한 결실을 맺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고, 인생의 덧없음을 생각하면서 서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증오와 상대를 울리며 얻는 개인 이기주의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자.
머지 않아 꽃은 지고, 이파리가 우거지고, 그 자리를 비집고 열매들이 모습을 갖추어 갈 것이다. 가을에는 토실토실한 열매를 목전에 두고 감흥에 젖기도 할 것이다.
지금은 봄이다. 꽃을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존경받는 삶인가를 따져보자. 머지 않아 우리들에게는 가을이 당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산에 핀 꽃 속에서 4.19의 얼도 되새겨 볼 일이다. 느낌이 깊을 수록 행동은 겸허해지고, 그럴수록 열매는 제 빛을 발해가면서 가을을 향해 착실하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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