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택시를 탔을 때 기사는 도로 양쪽의 불법주차를 시가 단속하지 않아서 도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고 투덜댔다. 일본에만 가더라도 도로상의 불법주차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수가 없다며, 행정이 강
2006년 04월 11일(화) 03:57 [경북중부신문]
일본의 주차질서가 우리보다 한단계 위인 것은 사실이고, 일본과의 감정에 관계없이 본받을 것은 본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날 택시기사는 한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택시에 관한 한 일본은 친절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손님이 오면 직접 택시에서 내려 모시고, 짐꾸러미가 있다면 정중하게 그것을 받아들고 트렁크에 넣어주기까지 하는 친절은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다.
그날, 불법주차를 탓하며 일본을 거론하는 그 택시에 필자가 탔을 때 기사는 아무말이 없었고, 무뚝뚝하기까지 했다. 필자가 행선지를 얘기해도 대꾸조차 없었다.
물론 친절하고 정중한 택시기사들은 많고,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더군다나 뼈빠지게 일을 해도 수입이 안되다보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장사가 안되는 식당에 가서 주인이 짜증을 부린다면 그대로 앉아 식사를 할 인내심 좋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일본의 주차질서를 얘기하는 그 기사로부터 불친절한 그 기사의 모습을 목격한 필자는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모든 현상에는 정반합의 질서가 상존한다. 특정개인에게 잘못이 있다면, 잘된 점도 있기 마련이다. 비가 계속되면 소금장수는 울고, 우산장수는 웃는 그런, 식이다.
정보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된 사람들은 상대를 비판할 기회도 많이 갖게 된다. 그러나 우리처럼 칭찬에 인색한 종족들이 이 지구상에 과연 얼마나 될까.
좋은 일을 하다가 한번 잘못하면 그 당사자는 인생이 절단날 만큼 삿대질을 받는다. 잘한일에 비해 못한 일의 양은 새발이 피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상대를 비판하려면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나에게도 과거의 잘못이 있거나 마음 속에 숨겨놓은 잘못들은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다.
상대를 지적하되 그 사람이 더 발전할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지적하라. 그것이 비판이다. 그러나 골목으로 몰아부쳐 돌팔매질을 한다면, 당한 사람이나 가한 사람이나 간에 매일반 같은 부류가 된다. 불법주차에 대한 택시기기사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택시기사의 불친절을 지적하는 필자의 지적도 그로지는 않다.
자아성찰을 통해 우리는 공존공생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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