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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를 회고한다
김 한 기
2006년 04월 18일(화) 02:46 [경북중부신문]
 

ⓒ 중부신문

민 주 평 화 통 일 자 문 회 의
구미시협의회 수석부회장

 4.19혁명은 한국의 정치 발전사에 하나의 획기적인 진기를 기록한 역사적으로 크나큰 의미를 지니는 일대 사건이었다.
 1960년 2월 28일은 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유세가 예정돼 있었다. 집권당인 자유당은 그 날이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등교시켜 대구 신천번 유세장에 가지 못하도록 발을 묶었다.
 이에 분노한 대구 시내 8개 학교의 고교생들이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패와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일어났던 ‘2. 28 학생민주운동’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3. 15부정선거에서 주권을 박탈당한 마산 시민들이 정의의 깃발을 높이들고 시위를 했다. 경찰의 발포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시위대열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던 마산상고 김주열군은 경찰이 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이에 격분한 시민들은 김군의 시체를 들것에 메고 시가지를 돌면서 자유당을 규탄하는 강렬한 시위를 했다. 이 사실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민심은 정부로부터 완전히 돌아서고 말았다.
 18일에는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던 고려대생들이 자유당 괴한들로부터 기습을 받아 많은 피를 흘리고 쓰러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독재정부 타도의 결의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말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이승만 독재 정부 물러가라’“못살겠다 갈아보자‘등의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경무대(청와대)앞까지 진출하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오후에는 비상계엄령으로 바뀌면서 경찰은 군중을 향하여 무자비하게 발포했다. 독재자가 쏜 총탄에 183명이 목숨을 잃었고, 6.259명의 부상자가 속출하여 궂은비가 내리는 아스팔트 광장은 유혈이 낭자했다.
 사태를 파악한 이승만은 하야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하였고, 이강석은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여사, 동생을 차례로 권총으로 쏜 다음 자신도 자살함으로써 부정선거의 원흉인 아버지가 지은죄를 사죄했고, 환멸을 느끼게 했던 자유당 독재정부는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4.19당시 필자는 대학교 3학년, 뿌리 채 말라 버린 민주주의를 살려 보자는 일념으로 학우들과 함께 고문을 나서기로 결의했다. 당시 학생회장은 자유당 고위층의 친척이어서 데모의 총지휘는 변론부장인 나에게 맡겨졌다. 도지사 관사로 가기 위해 2군사령부 앞을 지날 때 소총에 칼을 꽂은 병사들은 오히려 우리를 격려하는 눈빛을 보내주어 사기가 북돋워 졌다.
 관사에 도지사 없음을 확인한 후 도청으로 향하였다.
 광란하는 경찰들이 휘두른 방망이에 수많은 동료학생들이 부상을 당했고, 소방관은 우리에게 붉은 염료를 섞은 물을 뿌려댔다.
 우리는 시위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희생된 학우들의 명복을 빌고 부상당한 동료들의 쾌유를 기원했다.
 부상학생을 돕기 위해 우리 일행은 모금함을 들고 교문을 나섰다. 구멍가게 주인, 거리의 행인, 요정의 호스티스 등 시민들은 다투어 성금을 넣어주었다. 밤11시경 대구 매일신문사에 성금을 기탁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학장님의 짚차에 스피커를 장착해 간부 3명을 대동하여 시가지를 누비면서 자유당 정부는 물러갔으니 이젠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업에 열중하자는 내용으로 종일 가두방송을 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환호와 박수를 보내준 그때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돌이켜 보면 시대감각이나 세대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학창시절의 4.19는 자유회복과 질서의식이라는 뚜렷한 목표달성이 있었으니 지금도생각하면 그 당시 거리의 함성이 귓전에 메아리치는 듯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보람있고 값진 추억으로 남아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정의감과 용기가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지 아니면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있지나 않은지 다시 한번 반추하면서 2006의 4.19를 맞이한다.
관리자 기자  seok@ikw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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