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중심에 설 때 지도자는 존경받을 수 없다.”
최근 모 언론지상에서 미국의 학자가 한 말입니다.
3천여명의 미국 목숨을 앗아간 이라크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이 와중에 2망여명의 미군을 더 파병하려고 옹고집을 부리는 부시를 놓고 한 얘기입니다.
이러한 말을 한국의 모 언론이 받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뜻 보아도 그것이 노무현 대통령을 염두해 둔 글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모언론이 노대통령의 부르튼 입술만을 클로즈업해서 대서득필했습니다. 개헌과 열린우리당의 향배를 놓고 연일 논쟁의 중심에선 노대통령의 언변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르튼 입술 사진’을 게재했다는 것을 직감할수 있었습니다.
80년대, 민주화의 서운이 돌 당시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찬탈한 군사정권에 대해 지금의 특정 언론들이 ‘죽기 살기로 싸웠다면’ 과연 80년대의 억울한 영혼들이 이렇게도 많이 천상에서 떠돌아 다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공직에 있든, 개인이든, 언론이든, 권력이든, 절대적인 진실만을 가졌다고는 볼수가 없습니다.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 이 지구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현실이자, 한계일 것입니다. 오로지 정도의 차이 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비판하는 비판 기능은 늘 겸손해야 합니다. 비판의 주체 역시 잘못된 과거를 필히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군사독재시절, 과연 막강한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여과없이 비판했는가,라는 자기반성을 양심에 깔고 있다면 일국의 대통령을 무조건 경시하는 자세는 표출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국의 대통령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논조나 정강정책과 다르다고 해서 가감없이 비판하는 자세가 얼마나 옳은 일인지, 돌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국경없는 경제 전쟁시대가 격화될수록 그만큼 민족주의, 국가주의는 구체화 되는 법입니다.
자국의 대통령을 마치 어린애 취급하는 국민들을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들이 어떨지…,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아울러 대통령 역시 표현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무심코 던진 돌 때문에 우물속의 개구리는 생존의 벼랑에 서는 법입니다. 논쟁의 중심에 서기 보다는 논쟁을 해결하는 대통합의 해결사역할을, 대통령은 해야 할 것입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 상황에 따라 잣대를 제마음대로 갖다대는 언론의 자세 역시 지양되어야 합니다. 군사독재 시절, 과연 정도언론이었느냐 하는 자기반성을 해본다면, 겸손이 생겨날 것입니다.
김차옥 기자 cha-ok@hanmail.net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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