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이는, 생존권적 차원의 아닌 상대우위를 점하기 위한 공격적인 양상이라는 점에서 우려되는 바가 크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성이 상실되고 기계적인 면이 우세할수록 사람이 사람으로서 향유할수 있는 범위는 축소된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한사람의 행복을 위해 열사람의 희생이 강요되는 현대사회의 경제논리는 인간적이라고 볼수 없다.
극소수의 삶의 행복을 향유한다는 측면에서 현대의 경제 논리가 과거 역사가 다른 점이 있던가. 봉건시대의 특권층이 무력으로 타인의 행복을 점령했다면, 현대의 특권층은 보이지 않으면서 합법화된 무력으로 타인의 행복을 범하려고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니, 인류는 불행으로 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모 언론은 국가별로 행복지수를 발표하면서 인구 수만명의 조그마한 섬을 모델로 내놓았다. 경쟁이 없는 사회,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을 만큼 자연으로부터 의식주를 해결하는 이들로부터 불행이란 있을수 없다는 것이다. 경쟁이 있을수 없고, 사리사욕이 있을수 없으니, 싸움이 존재할 리가 만무하다. 구정 년초부터 무슨 쓸데없는 얘기를 하느냐고 코웃음을 칠수도 있겠으나, 그러나 생각해봐라. 싸우고, 살리고, 죽이는 것 만큼 극악무도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살자는 것인데, 죽여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이 세상에 생명만큼 고귀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너를 죽이고 내가 살아도, 나는 머지 않은 날에 죽기 마련이다. 그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걸고 죽음내기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식의 삶의 전형을 일순간에 망가뜨리지 말자는 얘기다. 서로만나 웃음 짓고, 만나는 얼굴에 근심이 낄때는 서로 다독여 주는 삶의 모습, 내가 너무 많은 재화를 획득했기 때문에 내 생존을 위한 재화 이외의 재화는 세상에 환원하는 모습. 그 모습들이 그립다.
설날을 넘기면서 짚고자 하는 말이다. 연예인 몇 명을 모아 놓고 노닥거리는 방송프로보다는 진정으로 삶의 냄새가 나는 현장을 찾아 진솔한 삶을 얘기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자신들을 되찾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하는 법이다. 배분보다는 성장이 우선시 되는 세태도, 머지 않은 날에 성장보다 배분이 우선시 되는 세태로 바뀔 것이다.
상경하애, 상부상조, 십시일반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말없는 충고이면서 선물이다.
고향을 다녀온 이향민들이나 고향을 지키는 토박이들 모두 진정으로 고향을 가슴에 담는 생활을 실천으로 옮겨보자.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간에 하루 세끼 먹기에 급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차옥 기자 cha-ok@hanmail.net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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