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은 돈 들이지 않고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값진 생활 덕목이다. 대체로 선진국의 기준을 경제력이나 문화의 발달 정도에 두지만, 그 나라 국민들의 몸에 밴 '친절'도 또한 그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친절도'는 어느 정도일까. 전화가 두 번만 잘못 걸려오면 “잘못 걸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대신 “뭐요?” “아니라니까” “아침부터 재수 없게.”등의 욕설 담긴 짜증을 내는 사람이 많다. 오히려, “미안합니다”하고는 “여기는 몇 번입니다”라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출퇴근길에 버스나 친절에서 발을 밟히면 눈을 흘겨 뜨는 우리와는 달리 자기 발 관리를 잘못했다 해서 상대방에게 오히려 용서를 구한다는 말은 그저 우스겟 소리는 아닐 것이다.
친절에 대한 관념이 옛날부터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길을 가다 날이 저물어 동리에 들어가면 나그네는 식사를 대접받고 잠자리까지 제공받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훈훈하던 인심은 사라지고, 이기적이고 몰인정하게 변해가고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했던 일본은 ‘친절’을 꾸밈없이 행동으로 옮겼기에 오늘날 세계인은 일본을 친절의 본보기로 극찬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동창인 포항공대의 김원중 교수가 일본 나고야를 방문했을 때, 지하철역이 어디쯤인지 미리 알아둘 셈으로 길가는 한 여인에게 길을 물었다고 한다. 이 여인은 말로 설명해도 될 것을 굳이 지하철역 안까지 안내해 주고는 가지 않고 서 있기에 하는 수 없이 계획에도 없는 전철을 타고 시가지를 일주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교환 교수로 미국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서울의 박 교수는 운동 삼아 7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곤 하는데, 하루는 출근시간이 바빠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거기에는 한 여인이 타고 있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는데, 그 부인은 외면해 버렸다.
1층에서 내리면서 또 다시 예의를 표했으나 답례는 끝내 없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박교수는 만연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불친절에 대한 칼럼을 썼다.
우리 나라를 다녀간 외국인들에게 한국 방문에 대한 소감을 물으면 ‘길을 묻기 위해 행인에게 다가가면 모두가 피해버려서 불편했으며, 안내원 없이는 도저히 관광을 할 수 없는 나라’라고 말한다니, 한번 다녀간 사람은 다시 올 마음이 생기겠는가. 이 말을 들은 다른 외국인들은 우리나라를 방문할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 국민일수록 처음 만나는 외국인이라도 눈이 마주치면 목례나 미소로 친근감을 표한다.
우리는 익히 아는 사이가 아니면 무표정하게 지나치거나 혹시 눈이라도 마주치면 쏘아본다고 해서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
마음을 열어야하겠다. 돈 안들이고 능히 행할 수 있는 친절을 생활습관으로 삼아 불미스러운 불친절의 오명을 씻어 버려야 하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옛말을 마음에 새기자. 친절을 우리 손에 쥐어진 귀한 보배로 여기고, 내가 먼저 베풀 때 밝고 인정이 넘치는 명랑한 사회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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