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2010.3.11.13:50. 법정 스님 원적(圓寂). “장례 의식 절차는 최소한으로 하고 진신 사리는 ‘가르침’ 그 자체이니 다비식 후에는 사리를 찾지 말라.”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소멸하는 것과 같은 것/구름이 본래 실체가 없듯/나고 죽고 가고 오는 모든 것이 마찬가지이네/ 평생을 두고 무소유의 가르침으로 일관하며 당신 자신이 이를 한 치 어긋남이 없이 실천했기에 오늘 우리는 그를 위대한 스승으로 우러른다.
적거(謫居)의 의미는 내 자신의 리듬에 맞춰 내가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함이라며, 참대밭 아래 난 좁은 길을 아무 가진 것 없이 오직 장삼 한 자락 펄럭이며 산책 나가듯 이승 하늘을 그는 유유히 떠났다.
성직자로 서서 눈만 뜨면 진리를 외치고 사랑을 외치면서도 자신의 잇속을 차려 더 많이 가지기에 급급하고, 명예욕의 노예가 되어 세상이 자신을 좀더 크게 봐 주기를 바라는 데 혈안이 되어 있고, 자신을 위하여 충고라도 한 마디 하면 길길이 뛰면서 저주의 화살 쏘기를 서슴치 않는, 참 성직자 상실의 시대를 걸어가면서 법정 스님과 같은 언행일치의 큰 스승을 잃은 데 대하여 우리는 가슴 아파 하는 것이다.
송광사 불일암(佛日庵)을 손수 짓고, 떠난 뒤에도 그 뜰에 피는 매화 소식을 유난히 그리워했던 그는 “매화 향기를 맡으려는 것은 어렵게 피어난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했다 한다. 그렇게 어렵게 피어난 꽃이라면 향이라도 맡아 주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그러나 그 속에는 봄이 오는 소리를 몸으로 들으면서 저절로 부동암향(浮動暗香)이 콧속으로 스밀 때까지 기다리는, 그 철저한 자연 그대로를 사랑하자는 진정성이 내포되어 있음이 아니었던가.
지병이었던 폐암을 시대의 가슴앓이처럼 안고 그는 갔다. 그러나 그의 긴 가르침, 큰 울림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아니 이후에도 오래 계속될 것이다.
“갖지 않은 자가 부자요 많이 가진 자가 가난한 자다. 물건은 가졌던 자가 죽으면 따라서 죽는다. 적게 가질수록 더욱 사랑할 수 있다. 그것마저 다 버리고 갈 우리가 아닌가. 미련없이 훌쩍 떠날 준비를 하라.”
강원도 깊은 골에 작은 오막 한 채 짓고 전기도 넣지 않은 당신께 그 연유를 물었더니 “전기를 넣으면 자연히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갖은 문명의 이기가 들어올 것인데 그러면 산속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이냐. 산속에 들어와 내가 나의 주인이 되기 위해 왔는데 왜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 흔한 꽃 한 송이 없이 좁은 대나무 평상에 누워 떠나는 모습으로 무소유의 길이 어떤 길인지 몸으로 보인 그 분을 다시 생각하며, 생활이 권태로울 땐 가끔 그가 즐겨 듣던 바흐의 ‘무반주 챌로 연주곡’이라도 들으며 적게 가진 행복에 감사할 일이다.
그의 가르침 한 구절을 되새긴다.
“무소유란 혼자 누릴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것이며,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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