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탑은 도리사 극락전의 앞뜰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 3.3m 이다. 도리사는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졌을 때의 전설에 나오는 아도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석탑의 기본형은 방형으로서 방형의 지대석 위에 기단이 놓이고 그 위에 탑신부와 상륜 등이 중첩되었다.
지대석은 10매의 장대석으로 짜여졌는데, 상면에는 1단의 각형 굄을 새겨서 그 위에 기단부를 받치고 있다. 기단부는 네 구석에 방주를 세우고 그사이의 각 면에 장방형의 판석을 여러 장씩 세워서 마치 병풍처럼 돌려진 측면을 이루고 있는데, 북면만 7매이고 다른 면은 모두 6매석으로 남면 중앙부에는 세로로 긴 장방형의 문비가 음각되어 있다. 기단의 갑석도 네 귀에 장대한 판석을 놓고 그 사이를 여러 장의 돌로 짰는데, 각 면이 똑같이 3매석이다. 갑석 윗면에는 별다른 구조 없이 평평한 면에 옥신이 놓였고, 각 층이 10개의 크고 작은 석재로 구성되어 있어서 마치 모전석탑의 구조와도 같은 일면을 보이고 있다.
옥신은 3층으로, 초층은 크기가 서로 다른 네모지고 두툼한 석재들을 삼중으로 쌓아 이루었는데, 동면은 15매석이고 남면은 13매석이다. 그 위의 옥개는 일반형 석탑의 옥개석 형태와 달리 지붕형의 옥개가 아니어서 받침이 없고 그 위에 낙수면도 없으며, 전탑이나 모전석탑에서와 같이 상면에 몇 단의 층단이 마련되어 있다. 각 층단은 기단부 갑석과 같이 네 귀에 장대석을 배치하고 그 사이를 몇장의 장방형 석제로 결구하였고, 그 위에 2층의 층단을 놓았는데 그 층단은 상하층 동면이 같이 4매석으로 구성되었으며 남면은 하층이 5매석, 상층은 4매석이다.
2층 옥신은 각 면마다 2층으로 장방형 석재를 중첩하여 조립하였는데, 동면은 7매석이고 남면은 8매석이다. 남면에는 중앙에 문비형을 모각한 판석을 세로로 끼우고 그 위에 옥개 갑석은 네 귀에 장대석을 배치하고 각 면마다 그 사이를 장방형 석재로 메웠는데, 동면은 2매석이고 남면은 3매의 작은 석재로 구성되었다. 그 위의 층단 받침은 3단이다. 3층 옥신과 옥개는 각각 한 돌로 조성되었고 밑에 각형 1단의 받침이 있다. 낙수면에는 2단으로 굄을 만들어 그 위에 상륜부를 받치고 있는데, 1. 2 층의 그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상륜부에는 노반, 석주, 연화가 조각된 원형의 앙화와 보주가 각각 놓였다.
이 석탑은 구조상 옥개 낙수면이 층단을 이루고 있는 점이라든지 각 층마다 작은 석재를 중첩 결구하여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보아 오히려 모전석탑 계열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 탑을 현지에서는 ‘화엄석탑이라 일컫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축조연대는 남면 상하부에 모각된 양 문비형의 양식과 상륜부의 조각을 비롯한 각 부재의 돌을 다듬은 수법 등으로 보아 건립연대는 고려시대 중엽으로 추정된다.
◆ 자료제공 : 구미문화원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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