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3층 석탑으로 높이는 7.2m이다. 일선교 사거리에서 해평족으로 약 3km 떨어진 동남쪽 논 가운데 서 있으며 죽장동 5층석탑과 거의 비슷한 양식이다. 주변 경작지에서 연화문 막새기와를 비롯하여 많은 기와조각과 토기조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부근이 절터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약간의 석제가 결실되기는 하였으나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이중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탑신을 건립하였다.
지대석 위의 하층 기단의 면석은 8매로 구성되었는데, 우주와 3개의 탱주가 각출되어 있다. 하층 기단 갑석은 6 .7매로 구성되었고, 네 귀퉁이에는 면의 합각이 뚜렷하며, 상면에는 4분원의 몰딩과 낮은 각형 1단 받침으로 상층기단을 받고 있다. 상층 기단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가 각각 2개씩 각출 되었으며, 각 면의 부재는 동서면이 3석으로 구성되었고 남면이 1석, 북면이 2석으로 이루어졌다. 상층 기단 갑석은 4매석으로 결구되었으며, 하면에는 부연이 조각되고 상면에는 동근 몰딩과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으로 옥신을 받고 있다. 옥신 바로 밑에도 치석한 장대석 받침 2석을 중첩한 점이 특이하다.
옥신과 옥개석은 각각 여려 장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초층 옥신은 네 귀통이에 석주를 세우고 그 사이에 1매씩의 면석을 세웠다. 남쪽면에는 우주석에 모곽이 조각된 돌을 좌우에 세우고, 위에는 역시 모곽이 조각된 미석에 해당하는 돌을 얹어 감실을 조성하였다. 입구에는 문을 달았던 원공이 남아 있는데 이는 죽장동 석탑의 구성과 같다. 옥신에는 유쥬거 걱츌되지 않았다. 옥개석은 여러 장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낙수면은 전탑과 같이 여러 단의 층단을 이루고 있다. 옥신에 우주가 모각되지 않는 점이나 옥개석 낙수면에 층단이 표현된 점 등은 모두 초층 옥신 및옥개석과 동일하다. 옥개받침은 1. 2층은 5단이고 3층은 4단이다. 반면 낙수면의 층단은 1층이 7단, 2층이 6단, 3층이 5단이다. 상륜부는 노반이 놓였는데, 노반 상면에는 각형 1단의 받침이 있고 그 꼭대기에 복발 받침인 원형받침 1단이 각출되었으며, 그 중앙에는 찰주원공이 관통되어 3층 옥개석 중심에까지 구멍이 뚫려 있다.
초층과 2층의 옥개석 전각 상면에는 낙수골이 뚜렷이 음각되어 있고. 3층 옥개석 전각 상면에는 낙수골은 없으나 합각의 표현만은 뚜렷하다. 각 층의 옥개석 받침이 직각이 아니고 약간씩 사선을 이루고 있다. 즉 기단부의 양식에서도 하층 기단 면석에 3개의 탱주가 각출된 것은 초기적인 약식이라 할 수 있는데. 탑신부와 옥개석의 구성법은 다소 시대가 떨어지는 면을 보여준다. 석탑재의 치석 수법이나 기단부의 구조 및 옥신석. 옥개석의 양식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8세기경으로 추정된다.
◆ 자료제공 : 구미문화원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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