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은 검재 최수지의 후손인 최광익이 1731년 (영조 7)에 아들의 살림집으로 건축했다고 전한다. 집 앞에 큰 바위가 2개 있어 ‘쌍암고가' 라고 하였다. 동서로 긴 대지에 앞에서부터 대문채, 사랑채, 중문간채, 안채, 사당을 차례로 배치했다. 사랑채만 남향이고 나머지는 동향이다.
안채는 비교적 큰 6칸통 대청을 중심으로 하여 그 좌우에 방과 부엌 등이 ‘ㄷ’ 자형을 이루고 있다. 좌익사에는 2칸통 건너방(윗방), 1칸 마루방, 1칸 온돌방, 1칸 부엌을 배치하고, 우익사에는 1칸 찬방, 2칸통 안방, 1칸 부엌을 배치했다. 안방 뒤편에 찬방[또는 도장. 고방]을 두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평면구성이다. 안방 부엌쪽에는 안방에서 이용할 수 있는 벽장을 시설하고 건넌방 뒤쪽에는 옆뜰에서 사용하는 창고를 마련했다.좌우익사 안마당쪽에 있는 쪽마루는 안대청과의 동선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근년에 설치한 것이다. 막돌 허튼층쌓기한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운 3량가 홑처마 장혀수장집이다. 대량 위에는 제형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게 하고 기둥 상부에는 안쪽을 사절
한 보아지를 끼워 대량을 지지하도록 하였다.
중문간채는 트인 안마당 앞쪽에 조금 떨어저 안채를 가로막고 있다. 중문간채가 사랑마당에서 안채를 볼 수 없게 시야를 차단함으로서 안채는 은폐적인 여성공간이 된다. 중간문을 촤측편에 둔 것도 중문을 들어설 때 안채내부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랑채는 좌측에 4칸으로 구분되어 ‘田’ 자를 이룬 온돌방을 두고 3칸 대청과 1칸 제청을 배열한 겹집이다. 田자 앞줄 가운데 네 짝 미서기문 을 시설한 사랑방이 있고, 그 뒤편에 골방 두 개가 놓여 있다. 제사와 상례를 위한 제청이 사랑대청 한쪽 모서리에 위치한 경우는 흔치 않다. 건물 앞쪽에는 툇마루를, 뒤쪽과 우측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건물의 좌측에는 뒷마루, 사랑방, 골방에서 이용할 수 잇는 벽장 4개가 마련되어 있다. 사랑방과 대청 사이, 건물 우측 2칸, 제청, 골방 등 곳곳에 분합들문을 시설하여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막돌 초석위에 정면과 우측면에만 원주를 세우고 5량가로 꾸민 소로수장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기둥 상부에는 초각한 보아지를 끼우고 대청 상부에는 대량에 충량을 걸고 그위에 외기반자를 설치했다.
사당은 전면에 퇴칸을 두고 그 뒤편 3칸 모두에 아주 높은 굽널을 들일 정자살문을 달았다. 막돌 초석 위에 방주를 세우고 장혀만 수장한 3량가 홑처마 맞배지붕집이다.
◆ 자료제공 : 구미문화원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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