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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최의 세상 내시경] 탁란(托卵)새와 정치인
최중근 원장
탑 정 형 외 과
2011년 06월 21일(화) 01:20 [경북중부신문]
 

ⓒ 중부신문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17번은 새의 노랫소리를 표현한 곡이다. 그 새는 바로 모차르트가 직접 키우면서 애정을 쏟았다는 찌르레기인데, 가만히 들어보면 "찌르, 찌르릇"하는 영롱한 지저귐이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찌르레기와 함께 청아한 목소리를 뽐내는 새를 꼽으라면 나는 뻐꾸기를 꼽겠다. "뻐꾹 뻐꾹" 단순한 울림이 때론 구슬프기도 하고 들을수록 신비스럽다. 지저귐이 남다르다는 것 외에도 찌르레기와 뻐꾸기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탁란'하는 새라는 점이다.
 탁란(托卵)이란 자기가 낳은 알을 남의 둥지에 몰래 갖다놓고서 대신 키우게 하는 것이다. 생태계의 특이한 법칙이다. 물론 교묘한 눈속임이 필요하다. 뻐꾸기나 찌르레기 같은 탁란새들은 알을 품을 줄도 모르고, 둥지를 지을 줄도 모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탁란이 필수다. 뻐꾸기는 뱁새의 둥지에다가 탁란을 하고, 찌르레기는 휘파람새에게 탁란을 한다. 기가 막힌 것은 둥지의 주인인 어미새들이 감쪽같이 속아서 남의 알을 품어주는데 보통 하루 먼저 부화하는 탁란새의 알은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곤 둥지를 독점한 채 어미새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꼬박꼬박 받아먹다가 결국은 둥지를 버리고 떠난다고 한다. 참으로 배은망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비단 이런 일이 생태계 안에서만 일어나고 있을까? 나는 요즘 정치권의 난맥상을 보면서 문득 탁란 새들의 아이러니한 생존 법칙이 연상되었다. 정권 말기면 으레 찾아오는 레임덕과 채 1년도 남지 않은 총선의 조바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인지 최근 일부 정치인들은 너무나도 쉽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내던지고 있다. 이들의 모습이 마치 품어준 공덕도 모르고 알에서 깨자마자 태연히 주인을 몰아내는 탁란새들의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 스스로의 정체성을 바로잡는 것이다. 지금의 여야를 보면 당의 정체성과 가치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최근 꾸려진 한나라당의 새 원내 지도부는 보수정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감세를 철회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종부세 원상복구, 대북정책 전환, 반값 등록금에 이르기까지 연일 한나라당의 정책인지 의구심이 드는 포퓰리즘 정책들을 쏟아내며 당의 정체성을 크게 흔들고 있다.
 민주당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재보선 때도 표를 위한 정치공학에만 치중한 나머지 당의 지지 기반과 색깔과 정체성이 판이하게 다른 야당들과 손쉽게 손잡으면서 노선의 혼란을 초래했다. 마찬가지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서슴없이 당의 정체성을 망각한 야권 연대·통합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신임 지도부의 역할은 두 말할 것 없이 쇄신과 개혁이다. 위기에서 당을 구하라고 뽑아준 만큼 뼈를 깎는 자세로 구태를 도려내고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백번 지당하다. 문제는 어찌하여 쇄신이라는 미명 아래 당의 정체성을 흔드는 무모함으로까지 치닫는가 하는 점이다. 신주류니 구주류니 쇄신파니 하는 세력다툼으로도 모자라 바라보는 지지자들로서는 혼란스럽고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부디 그들이 자기 살겠다고 품어준 주인들을 몰아내는 뻐꾸기와 찌르레기가 아니길 바란다.
 사실상 따지고 보면 정체성 논란은 총선의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고 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정당에 있어서는 정체성이란 목숨과도 같다. 일종의 위기탈출의 수단으로 맘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80도 급선회하는 정책과 남발되는 포퓰리즘 정책들은 지지층의 이탈만 가속화시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집토끼를 놔두고 산토끼를 잡으려다가는 두 마리 다 놓치는 수가 있다.
 지금과 같은 혼란 속에서 최선의 길은 여야 모두 자기 정체성을 되찾는 것이다. 스스로 지켜내야 할 가치가 없는 정당이라면 그 자체로서 존재의미가 없다. 마지막으로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뻐꾸기와 찌르레기 같은 탁란 새들이 탁란에 성공하는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부디 우리 정치권이 탁란새의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남민정 기자  da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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