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deja vu)란, '이미 보았다'는 프랑스어로 분명히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인데도 언젠가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드는 현상을 말한다.
사람의 뇌세포는 가공할만한 기억의 힘을 갖고 있어서 스치며 지나친 것도 저장하는 능력이 있다. 기억의 저장고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던 이런 기억들은 불현듯 무의식중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것은 데자뷰가 아닌 무소불위의 두 권력기관이 반복해 온 볼썽사나운 힘겨루기의 말로일 뿐이다.
법원과 검찰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한 사법개혁이 결국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난해 2월에 출범해 1년 4개월을 달려온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6월말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한다. 대검중수부 폐지와 특별수사청 설치, 양형기준법 제정과 대법관 증원 등 4개 핵심과제는 결국 결실을 맺지 못했다. 여야 원내대표가 다시 검토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말에 기대를 거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법개혁이 무산되기까지 정치권과 법원, 변호사, 검찰간 갈등은 지루하게 계속돼 왔다. 특히 국회와 검찰의 힘겨루기는 점입가경이었다. 입법권의 남용이라고 거세게 반발하는 검사들에 맞서 의원들은 검찰권의 오남용을 비난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와 수사의 칼자루를 쥔 검찰의 정면충돌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런 와중에 검찰 출신 국회의원들은 노골적으로 친정 편을 들면서 내부 분열을 초래했고, 개혁에 걸림돌이 되었다.
이 상황을 보면 '어'하고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느낌에 따르면 다음은 그럴듯하게 '국민 뜻'을 물을 차례다. 아니나 다를까 검찰은 사법개혁이 국민의 뜻과는 엉뚱하게 가고 있다며 오로지 국민의 입장에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청껏 외친다. 반대로 국회는 사법개혁을 거부하는 검찰이야말로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피를 토한다. 정작 국민의 목소리는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둘은 용호상박처럼 으르렁대지만 결국 승자는 있기 마련이다. 익숙한 예감에 따르면 사법개혁을 둘러싼 혈투는 검찰의 승리로 끝이 난다.
사법개혁의 좌초는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문민정부 이래 20년 가까이 끌어오며 똑같이 반복되던 일이다. 민주화 이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매번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참여정부 당시 중수부 폐지 여론이 뜨겁게 불붙었을 때 마침내 검찰개혁이 이뤄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내 목을 먼저 쳐라"며 송광수 검찰총장과 검사들은 거칠게 저항해 검찰개혁은 끝끝내 좌초되고 말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의욕적으로 시작하지만 막바지에 이르러 힘없이 주저앉는 것이 감쪽같은 판박이다.
불행하게도 사법개혁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좀처럼 전진하지 않고 있다. 이번 사법개혁이 무위로 돌아간 데는 법원과 검찰의 조직 이기주의, 정치권의 눈치 보기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그 첫 출발선에부터 실패의 소지가 다분했다. 여당과 야당이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목적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고, 한나라당은 광우병 보도로 정권에 치명타를 안긴 PD수첩이 무죄판결을 받자 이에 반발해 '법원개혁'의 기치를 올렸다. 일심동체라도 모자를 상황에 여야가 동상이몽으로 의기투합한 셈이니 태생부터가 불안했다.
물론 이번 사법개혁이 국회 내 특위를 설치했다는 점이나 법조 일원화나, 전관예우 방지, 검찰시민위원회 설치 등의 가시적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 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전 정권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아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희망을 저버리고 커다란 허탈감을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역사가 뒷걸음치는 것을 보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큰 보폭의 정치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작은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희망, 한 번쯤 느꼈던 것 같은 설렘, 분명 경험한 것 같은 에너지, 예전에 본 것 같은 성공적인 개혁이 데자뷰 되는 정치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