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은 고령 박씨 28세손으로 제5대∼제9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1917∼1979) 전대통령이 태어난 가옥이다. 1900년경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집은 한국전쟁 때 안채가 소실되고 아래채만 남았는데, 1964년 원래의 모습과는 다른 벽돌조적조로 안채를 다시 짓고, 1980년 접빈실로 쓰던 공간을 분향소로 바꾸었다.
입구 경비실에 접한 문을 들어서면 바깥마당 건너 정면에 생가 대문이 있고 마당 좌측에 분향소가 자리잡고 있다.
대문 바로 왼쪽에는 아래채 우측에는 관리사가 있고 건너편에 안채가 놓여 있다. 빈농이었던 생가는 원래 좌에는 관리사가 있고 건너편에 안채가 놓여 있다. 빈농이었던 생가는 원래 좌로부터 부엌, 온돌방, 온돌방, 고방 순으로 구성된 4칸 초가의 안채와 아래채가 당시 흔히 볼 수 있었던 튼 ‘' 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아래채는 맨 좌측에 앞뒤로 1칸씩의 온돌방을 두고, 그 우측에 방앗간과 외양간 1칸씩을 배치했다. 아래채에 방을 겹으로 두는 것은 흔치 않은 예로, 이는 7남매의 많은 식구가 거처할 방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앞쪽방은 2평이 못되는 아주 작은 규모로 안마당 쪽에 외여닫이 띠살 출입문이 나있고, 대문쪽 벽 중앙부에 눈곱재기 봉창이 하나 있다. 뒷방은 앞방보다 조금 더 큰 2평 남짓한 규모로 앞방 우측 작은 부엌 쪽에 외여닫이 띠실문을 내어 안채로 드나들게 하고 대문쪽에도 출입문을 내었다. 방앗간은 우측에 디딜방아가 있고 그 좌측에 뒷방 부뚜막 아궁이가 시설되어 있다.
배면벽 중앙에는 앞방 처럼 봉창을 내고 그 바로 앞 위쪽에는 시렁을 설치했다. 외양간에는 전면 좌측에 비교적 작은 구유가 놓여 있고 뒤쪽에는 방앗간처럼 시렁이 걸쳐 있다. 기둥 없이 토담벽을 쌓고 일부에 가는 보조 기둥을 세운 3량가로 외양간 상부에 초가에서 볼 수 있는 가는 말굽서까래가 보인다.
지금의 안채는 4개의 침실, 거실, 부엌 등이 마련된 ‘ㄱ’ 자형 양옥으로 현재 관리사무로 이용되고 있다. 관리사는 좌로부터 창고, 부엌, 온돌방이 차례로 배열되어 있고, 분향소는 약 16평 크기의 통칸에 영정이 모셔져 있다.
◆ 자료제공 : 구미문화원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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