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은 조선 숙종 때 공조참의를 지낸 용와 류승현이 1710년(숙종 36)에 세운 가옥이다. 용와는 1719년(숙종 45) 증광회시에 급제하여 예조 좌랑과 정랑을 역임하다가 곧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안동의 박곡에서 지냈다.
원래 안동군 임동면 박곡동에 있었으나,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인해 현 위치로 옮겼다.
당시에는 정자와 정침 및 사랑채, 부속사로 이루어져, 침간정이 앞쪽에 자리하고 뒤쪽에 정침, 사랑채와 광채가 ‘ㅠ’형을 이루고 있었다.
용와종택은 안채와 사랑채, 광채 및 사각문으로 구성된 약식이긴 하나 일종의 ‘ㅁ’ 자형 집이다. 정침(안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의 ‘ㅡ’자형 홑집으로 폐쇄형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2칸 온돌방을 두고 1칸 반의 부엌을 연결시켰다.
그리고 안방과 대청 앞쪽으로 퇴칸을 두었으며 우측으로 1칸반의 상방이 더해졌다.
안동지방의 양반 가옥대부분이 ‘ㅁ’자형인데 반해 여기에서는 ‘튼 ㅁ자형’ 배치여서 광채가 별도로 마련되었다.
부엌에서 일단 끊고 직각으로 꺾인 광채를 따로 배치한 점은 영남지역 대가 중에서는 흔한 예가 아니다.
사랑채는 2칸 온돌방과 폐쇄형 마루방을 두었으며 앞쪽으로 퇴칸을 두었다. 원래 아랫사랑으로 젊은 사랑주인이 손님을 접대하고 기거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으며 책방, 안방 또는 노부모가 사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폐쇄형 마루방은 판각 방으로 일종의 서고나 서재와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랑방 좌측으로 중문간, 문간방과 고방이 자리하고 있으며, 정침과 사랑채 사이에 토장으로 막고 사각문을 내었다.
침간정은 별당 또는 사당, 제청의 기능을 수행하는 용도의 3칸 겹집이다.
좌협칸에 2칸 온돌방을 두고 어칸은 폐쇄형 마루방과 개방된 마루 1칸이 있으며 우협칸에 마루 1칸과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어칸과 우협칸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마루가 청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어칸에 설치된 폐쇄형 마루는 방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정내에는 정실명, 기방헌, 침간정, 대청에는 용와음 등의 편액이 걸려있어 집주인의 품격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정침 부분은 안동지역 ㅁ자형 반가와는 좀 색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 자료제공 : 구미문화원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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