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라는 말이 익숙해지기가 무섭게 우리 사회에 '다문화 갈등'이란 말이 자리 잡고 말았다. 혹자는 다문화 갈등의 뿌리를 11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200년 동안이나 지속됐던 십자군 전쟁에서 찾기도 한다. 이처럼 인류역사가 증명해 주듯이 어쩌면 인간은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 가치관에 대한 갈등이 불가피한 존재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2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외국인 유학생부터 결혼 이민자, 외국인 노동자 등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특히 여성 결혼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농촌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농촌 총각들의 40%가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고 있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의 자녀만 해도 12만여 명에 달한다.
이미 대한민국은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것이다.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오랜 세월 한민족의 자부심이었다. 위기 앞에서는 우리를 하나로 뭉쳐주는 힘이었고, 숱한 시련과 고비, 국난 극복의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으로 단일민족 정신은 한국인 특유의 역동성과 에너지로 표출되었다. 이렇듯 오랫동안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타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배타적 단일민족 중심주의는 극복과 도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폐쇄적인 단일민족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지구촌이 열광하는 한류의 나라, 세계인들에게서 사랑받는 K팝의 나라답게 통 크게 다문화를 끌어 안아야한다. 보다 살갑고 따뜻하게 그들을 품어야 한다. 여기에는 나와 다른 가치관과 관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최근 노르웨이 테러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반다문화주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보여준 비극이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최악의 테러 뒤에는 바로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노르웨이의 비보를 처음 접했을 때 많은 이들이 9.11 테러처럼 오사마빈라덴과 같은 이슬람 테러세력들의 소행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 관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범인은 반이슬람세력의 백인 기독교 근본주의자였다.
놀라운 것은 이 사실이 전해지자 일부 극우 민족주의자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슬람 테러세력에 대한 반감이 그만큼 크단 뜻일까. 이슬람 테러세력의 존재가 그만큼 위협적이란 뜻일까.
법정에 서서 자신은 그저 이슬람의 지배로부터 유럽을 구하기 위해 살인을 했고, 결코 죄가 없다고 항변하는 테러범 브레이빅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내 머리 속에는 극단으로 치닫는 반이슬람세력이 더 위험한 존재라는 복잡한 생각이오갔다.
어찌됐건 다문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다문화 시대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다. 앞으로 한국 사회의 다문화정책이 어떻게 자리 잡느냐에 따라 미래 한국의 모습이 달라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부의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다민족과 다 종교인들을 참여시키고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게 바람직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민자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때까지 단계별 맞춤형 지원으로 가야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진심으로 그들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거듭나는 방법은 단일민족의 추억을 뒤로 하고, 다문화를 통해 새로운 한국인의 역동성을 개발하고, 우리만의 에너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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