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원은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진 것이다. 1570년(선조 3)에 금오산에 창건되었으며 1575년(선조 8)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1602년(선조 35)에 현 위치로 옮겨지었다. 1609(광해군 1)에 다시 사액되었고 서원훼철령에 제외되어 훼철되지 않았다. 길재 외에 김종직, 정봉, 박영, 장현광 등 5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음청루, 정학당, 내삼문, 상현묘를 일직선으로 두었으며 정학당의 앞에는 동. 서재를 두었다.
학문을 강론하던 강당인 정학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집이다. 막돌 허튼층쌓기한 기단 위에 넓고 큰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우고 5량가의 가구를 결조하였다. 어칸의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 실형으로, 온돌방의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 대청 뒤쪽의 문비는 각 칸마다 가운데 설주를 세운 영쌍창을 설치하고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았다.
사당인 상현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집으로 주상에는 외일출목의 초익공으로 장식하였다. 5량가인데 지붕을 높이기 위해 단연을 짧게 걸고 동자주와 대공을 높였으며, 종량을 받는 양봉 끝에는 쇠서가 나와있다.
정문인 읍청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며 자붕은 팔작지붕이다. 주상에는 2익공으로 장식하였는데 익공 쇠서는 단부가 사절된 둔탁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파련각하였다. 5량가인데 종량을 받는 양봉을 끝에는 상현묘와 마찬가지로 쇠서가 나와 있다. 대량 위에는 충량을 걸쳤는데 대량은 충량을 받기 쉽게 만곡된 자연재를 사용하였다.
◆ 자료제공 : 구미문화원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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