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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 의병 이끌고 항일전 지휘한 충신 ‘허위’
벽도 양제안 만나 민족의식 함양
2012년 10월 23일(화) 14:40 [경북중부신문]
 

ⓒ 중부신문
 허위는 부지암정사에서 사미헌 장복추선생의 강회에 참석하여 유생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문명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허위가 경세와 경륜으로 명망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30대 후반이었고, 이 때부터 교유관계도 널리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우선 주목되는 것이 벽도 양제안 (1851∼1919)과의 만남이었다. 벽도 양제안과는 1892년 허위가 진보의 신한에 전장을 경영할 때부터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후 을미의병기김산의진을 비롯하여 의병투쟁을 함께 전개한 평생의 동지였다. 양제안은 허위의 교유범위가 경상도뿐만 아니라 충청도 등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벽도 양제안은 1851년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의지리에서 양제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양제안의 기문은 몰락 양반으로 삼남지방 물산의 집결지인 강경에서 부를 축적한 부문호 였고, 양제안이 어릴 적에 보은 청산으로 옮겨왔던 것으로 보인다. 양제안은 6·7에 문리를 깨우치고 통사 7·8권을 역람하였지만. 경학보다는 병서를 두루 읽어 일찍부터 병술에 일가견을 이루었다.
 벽도 양제안은 1866년 병인양요가 발생하자 16세의 소년으로 척사격문을 작성하여 돌리려다가 부친의 책망을 듣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양제안은 민족의식에 눈을 뜬 것으로 보인다. 1893년 척양척왜의 기치를 듣고 농성을 벌인 동학교단의 보은집회에 참석한 벽도는 교주 최시형을 만나 일본군의 소탕을 제의하였으나 최시형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양제안은 허문숙 · 조백희 등 88인과 결의형제를 맺고 진천군 용소동에서 군대를 일으켜 일본군의 구축을 모색하였는데, 이 때 은밀히 동학교도와 연결하고 있었다. 1894년 허운초는 서울의 군대와 관료, 조백희는 전라도의 전봉준, 그리고 양제안 자신은 경상도의 상주 · 선산지역의 동지를 규합하여 거사를 도모하고자 하였으나 동학교도와의 불화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이진천기군에서 실패한 양제안은 홀로 김산군 봉계로 옮겨 농민군 토벌의 소모영장 조시형에게 의탁하였다.
 동학농민항쟁에서 양제안이 보여준 척양척왜의 입장은 김산의진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김산의진의 중근으로 참여한 양제안은 상주·선산·성주·김산 등지의 양반유생들을 연결하는 중심적인 인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산의진이 해산된 후 양제안은 영일군 죽장면 두마리에 은거하였다. 당시 대한제국의 성립과 더불어 의병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유생들이 상경하여 관로로 나아가거나 구극활동을 전개할 때, 양제안은 출사를 거부하고 두 마리에 은거하며 농업의 경영과 계몽운동에 전념하였다.
 양제안은 일찍이 사물의 이치를 널리 탐구하여 과학적인 발명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1892년 허위와 함께 진보의 신한과 청주에서 전장을 경영하며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관개를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보현산 중턱의 분지 두 마리에 은거하면서 장자인 양한기와 함께 수륜기를 제작하여 수전을 경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식직조기와 일영시계를 제작하여 설치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양제안은 계몽운동에도 힘을 기울여 두 마리에 학교를 세우고 보국안민지책과 보가수진지도에 입각한 기술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1905년 이후 양제안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재기하자 홍주에서 창의한 민종식 의병진에 참여하였다가 1907년 이후에는 정환직의 산남의진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산남의 진 말기에는 백산 우재룡과 함께 유격전을 전개함으로써 탁월한 병술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1910년 국권상실과 더불어 전개된 양제안의 국권회복운동은 만주와 국내를 연결하는데 많은 활약을 하였다. 당시 만주의 독립군기지 건설은 국내의 인적·물적 지원하에 전개된 것으로 양제안의 활동과 역할은 매우 컸다. 양제안은 과거 진천기군·김산의진·홍주의진·산남의진에서 관계를 맺고 있던 의병 출신들을 인적 자원으로 동원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 1910년대 경상도를 중심으로 결성된 무력적 항일 독립운동단체인 풍기의 광복단과 대구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진천기군에 참여한 88인의 결의형제 중 주목되는 것은 상주·선산지역의 인사들이다. 이들은 일찍부터 양제안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유생들로 그 중에는 허위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허위와 양제안은 상주·선산지방의 유상들을 폭넒게 연결하여 척양척왜의 기반을 구축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을미의병기 1896년 김산의진에서 유생충을 기반으로 활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자료제공: 구미 왕산기념관(465-6622)
중부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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