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는 1895년 ‘국모시해’와 단발령, 북제개혁을 단행한 일제에 대항하여 의병에 참여한 바 있었다. 1896년 의병진이 해산된 이후 허위의 활동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1898년 ‘복수소청’을 만들고, 이어 황국협회에 참여하였던 사실이 확인된다. 즉, 허위는 의병해산 이후 고향인 선산으로 하향하지 않고 서울에 계속 남아서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수소청은 비교적 보수적인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왕후시해에 대한 복수와 반일운동을 지속시키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띤 단체였다. 여기에는 허위를 비롯하여 이상천, 황보연, 이문화, 이건중, 채광묵 등이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1898년 봄부터 독립협회의 윤치호, 이상재 등이 주도하는 민권과 국정개혁운동이 본격화되었고, 그 활동은 대한제국 정부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하였다. 이에 황제는 보수적 인사들을 중심으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화에 대항하는 하나의 단체로 황국협회 설립을 기도하였다. 황국협회는 이기동, 고영근, 홍종우, 길영수 등 대한제국 초기 황실측근세력이 주도하고 각부대신과 협판 등 정부고관들이 후원하였다.
이들은 갑오개혁 시기에 해체된 상리국과 각 임방의 복설운동에 주력하고 있었던 보부상과 연합하였다. 황국협회 발기인에는 허위, 이상천, 이문화, 황보연, 이건중, 채광목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허위를 비롯한 근왕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아관파천 이후 재기를 도모하면서 도약소와 복수소청, 건의소청 등을 설립하고 주도하면서 강한 정치적 성향을 보이던 인물들이었다.
황국협회 인사들 중 허위·이상천·황보연·채광묵·민용호·심상희·김홍제 등은 1896년 의병 출신이다. 즉, 민용호는 주로 강원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의병장이었고, 허위는 경상도 김산의병장이었다. 심상회는 여주의병장, 김홍제는 남포의병장이었고, 이상천·황보연·채광목 등은 홍주의병 주도인물이었다.
황제는 농상공부 상공국장 길영수를 13도 도반수로 삼아 황국협회 소속의 보부상을 거느리게 하였다. 이들은 독립협회와 폭력적으로 대치하였다. 그러한 상황을 황국협회의 핵심인물 중의 하나인 민용호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 자료제공: 구미 왕산기념관(465-6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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