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심상희, 홍종우, 이기동 , 김홍제, 송진옥, 이재화, 나유석, 허위, 이상현, 황보연 등 수백인은 좌우로 말처럼 바삐 몰아 대안문(지금 대한문으로 바꾸었다) 밖에서 독립협회를 부수었다. 남은 무리는 회를 탈퇴하여 용산, 마포 등지로 갔다. 또 계속 쫓아가 몇 명을 때려 죽였고, 부상당한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수령은 모두 니현의 일본 조계로 숨어들었다.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 병합 직전인 1909년 일본공사관의 비밀 기록에 의하면 왕산 허위뿐 아니라 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많은 정치적 인사들에 대해 평가되어 있다. 먼저 허위를 보면 경상북도 선산의 유생이다. 무술년(1898) 독립협회 반대운동상소에 이름을 탁하고 이에 인하여 무사(처음 벼슬)하고 항상 을미복수의 대의를 논담하고 다수의 동지자와 결합하다. 현영운의 처와 형제의 의를 맺고 스스로 남매라 칭하고 궁중에 품주되다.
곽종석과도 결하여 갑자기 참찬에 승하다. 각도관찰사가 되다. 폭도를 이동시키는 협의가 있었다. 유생으로서는 일꾼으로서 남으로는 이유인, 곽종석과 결탁하고 북으로는 상해에 있는 현상건, 이학균과 통하고 서로는 유인석과 연락하여 각종의 운동에 관계하고 일시 당국 제1의 황도가로 일컬어진 일이 있다. 후에 경기도의 폭도수괴가 되다. 광무 2년(실은 융희3년) 6월 헌병에 체포되어 경성감옥에서 사형되다.
한편 김세기에 대해서는 “부인이다. 일찍이 영암군수에 임명되어 민영휘에 붙어 개성부윤이 되고 현영운으로 인하여 광주관찰사가 되었으며 허위와도 교제가 친하다고 하였고, 김연식은 “허위, 이상천과 결하여 형제가 되고 항상 복수의 일로써 자기의 임무로 삼고 있다. 현영운에 붙어 처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수원으로 대사 이지용과 일본에 가고 재판소 판사가 되고 이용태, 허위와 가장 친하다”고 한다. 신기전에 대해서는 “이용태, 조병식, 김영진, 허위, 민영기, 강석호, 김종한, 김가진, 이봉래, 이인영 민경식, 윤덕영 등과는 특히 친한 사이이다. 모민회, 공제회, 보부상 등과도 관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순종황제의 장인인 윤택영도 현영운, 허위, 김영진 등과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내부대신을 역임했던 이용태도 조병식, 허위, 신기선과 친밀하였다. 특히 허위와 절친했던 이상천에 대해서는, 한성인이다.
운동상의 일은 관계하지 않은 것이 없다. 허위와 결하여 형제가 되어 이용태의 모주로서 복수운동으로써 처음으로 벼슬을 얻다. 현영운과 가깝다. 평리원판사가 되어 시찰이라 하여 일본에 붙어 망명객 정탐의 요건을 띤 바 있다. 광무 10년 홍주폭도와는 기맥을 통하고 있었다. 고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는 평안검사 출신의 이중하와 후일 경북관찰사가 되는 장승원도 허위와 절친한 관계였다는 것이다.
◇ 자료제공: 구미 왕산기념관(465-6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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