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달 27일 일본의 압력에 따라 의정부 내에 관제이정소가 설치되었다.
관제이정소 의정관에는 의정부참정 신기선, 찬정 민병석, 권중현, 박제순 참찬 허위를 비롯하여 내부대신 이용태, 외부대신 이하영, 외부협판 윤치호, 법무대신 김가진, 탁지부대신 민영기, 군부대신 이윤용, 농상공부대신 이도재, 학부대신 이재극, 학부협판 교영희, 궁내부회계원경 이재곤, 궁내부통신원 회판 장화식, 궁내부특진관 김만수, 종2품 이상설 및 재정고문 메가타, 농상공부 고문 가토 등이 임명되었다.
일본공사관 통역관으로 시오가와를 의정부에 판견하여 관제개편에 참여시켰다. 이는 대한제국 정부와 일본공사관과 유기적 관계를 맺어 관제를 개혁한다는 명목에서 시작하였으나 실제로는 일본공사관이 주도하는 대한제국 관제의 식민지적 재편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때 허위는 신병을 이유로 관제이정소 활동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원인에 대해 신문에서는 애첩을 얻어 신병이 발작하여 관지 업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라는 내용이 기술되기도 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병을 칭하고’ 집에 누워서 손님을 사절하였다는 새로운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본정부의 대리인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관제이정소 활동을 피하기 위한 허위의 고육책으로 보여진다.
얼마 후 그의 정치적 활동은 계속되었다. 같은 해 11월부터 그는 일진회에 대한 반대운동을 시작하였다.
◇ 자료제공: 구미 왕산기념관(465-6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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