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산업단지의 수출이 207억 달러를 넘어서 단일공단으로는 처음으로 연중 200억 달러를 넘는 쾌거를 이루었다. 우리나라 수출 총액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구미산업단지는 71년 8백만 달러의 전자제품을 수출한
2003년 12월 08일(월) 04:04 [경북중부신문]
70년 공단 조성 당시부터 구미산업단지의 입주기업을 중심으로 공단 역사를 집어 보면서 200억 달러 수출 대업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69년도 구미공단의 용지매수가 시작되기 전 만해도 입주기업의 상당수가 내륙공단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항만시설이 있는 포항과 가까운 경주를 선호했었다.
그러던 것이 구미공업단지 설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되면서 청와대의 힘이 실려 구미에 내륙공단이 자리하게 됐다. 내국 자본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외자유치가 절박했는데 제일교포인 곽태석씨가 케이이씨의 전신인 한국 도시바를 70년도에 가동하면서 처음으로 대기업이 들어섰고 이어 71년에는 코오롱의 전신인 한국포리에스텔이 공장을 준공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구미공단이 전자공단의 메카로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 섬유업을 중심으로 전자업체가 들어섰으며 오로지 수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현재 한국산업단지공단의 명칭이 74년도에는 구미수출산업공단으로 얼마나 수출에 고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일론과 포리에스텔을 생산하는 한국포리에스텔이 호황을 누렸으며 73년도 총 수출액은 4천5백만 불, 입주업체는 78개 사에 달했고 이후 74년도 오리온전기, 75년 엘지의 전신인 금성사가 입주하면서 수출액이 1억불, 구미공단 근로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던 것이 70년도 후반에 대기업들의 준공이 늘어나면서 80년도 초반에는 수출 10억불, 입주업체는 219개 사, 근로자수도 4만 명을 넘어서는 등 고도 성장을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77년 한국의 총 수출액이 100억불이었고, 75년 구미단지의 수출은 1억불에 달해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미약했지만 제 구실을 하는 공단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던 시점이다.
80년도에는 한국전기초자를 필두로 삼성전자 등이 입주하면서 가전제품 시장이 급성장, 89년의 수출이 45억 달러를 넘어섰고 96년도에는 100억 달러 수출을 이루었으며 2002년도 말에 200억 달러를 돌파하고 2003년 10월 단일공단으로는 처음으로 연중 사상 처음으로 200억 달러를 초과 달성했다. 업체 수는 2002년 600개 사를 넘어섰으며 근로자는 6만5천명에 달하고 있다.
반도체 및 전자부품, 섬유를 중심으로 대기업 및 중소기업이 혼재되어 있는 구미산업단지는 2000년도가 넘어서면서 디지털 텔레비전, 반도체, 무선통신기기 산업을 중심으로 수출이 호조를 이루며 전자공단으로 확실하게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이와 함께 TFT-LCD 생산라인이 확대되고 디지털 LCD TV 생산 및 수요 증가, 동유럽 등 통신 인프라 미구축 시장의 활발한 개척 등으로 인한 무선통신기기이 수요증가로 수출이 증가, 올해 목표인 250억 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자제품의 수출 호조에 힘입어 구미공단은 전국 무역수지 흑자의 65%를 차지하는 무역전진 기지로 평가받고 있다.
〈안현근기자ank@kbjungb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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