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을 서도(書道)라고도 하고 서예(書藝)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는 서예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는데, 그 까닭은 서도와 서예가 뜻하는 것이 얼마간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서도’는
2003년 07월 05일(토) 10:34 [경북중부신문]
서도는 중국 후한 때 종이의 발명과 붓의 개량이 성행하여 위나라·진나라 때 왕희지(王羲之)·왕헌지(王獻之) 부자에 의해서 발달되었다. 그 후 동양에서 서도는 선비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었다. 관리를 뽑을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서도를 모르면 관리가 되기도 어려웠다.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서도의 도구인 종이, 붓, 먹, 벼루를 가리키는 것을 보면 그 위상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컴퓨터가 판치는 요즘에는 서예의 의미가 더 강해졌다. 붓글씨를 통해 미를 창조하거나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는 서도의 실용성은 매우 떨어져 있으나, 서예에 대한 관심은 어느 예술영역에 못지 않게 각광받고 있다. 어쩌면 가장 우리 삶에 밀착되어 있고 친근한 예술의 분야이기도 하다. 어느 집이나 사무실에 서예작품 하나 걸리지 않은 곳은 드물지 않는가.
근원 김용준의 ‘추사글씨’라는 글에 보면 “추사의 글씨가 제가(諸家)의 법을 모아 따로이 한 경지를 갖추어서 우는 듯, 웃는 듯, 춤추는 듯, 성낸 듯, 세찬 듯, 부드러운 듯,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조화가 숨어있다는 걸 알아서 맛이 아니라, 시인의 방에 걸면 그의 시경(詩境)이 높아 보이고, 화가의 방에 걸면 그가 고고한 화가같고, 문학자·철학자·과학자 누구누구 할 것 없이 갖다 거는 대로 제법 그 방 주인이 그럴 듯해 보인다”고 썼다. 서예의 위력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이런 위대한 예술의 영역인 서예계에서 참으로 듣기 민망한 소식이 들린다. 대한민국 서예대전과 대한민국서예전람회에서 협회 집행부가 금품을 받고 글씨를 대필해주고 이 작품들을 입선시켜 준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진 것이 그것. 그윽한 묵향에 악취가 스민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이야 상업성 때문이겠지만 서도를 해야 할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서예를 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서예의 경우 예술 창작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서도를 통해 인격을 수양하는 의미가 적지 않아 다른 분야의 타락보다도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 정서다. 오랜 시간 먹을 갈아 붓을 들던 일이 최근에는 먹 가는 기계도 나오고, 또 아예 제조된 먹물까지 나오니 먹을 갈며 수양하는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가. 안타깝다. 먹은 검어도 그것이 드러내는 뜻은 맑고 밝은 빛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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