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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불 ▣
◀ 김기옥 -구미수필 초대회장, 본지 편집위원-
2004년 05월 17일(월) 02:50 [경북중부신문]
 

ⓒ 중부신문


 “정말 이쁘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송이 연꽃, 아니 우담바라가 바야흐로 내 손에서 활짝 피어나는 순간이다. 삼 천년만에 한번 핀다는 불가의 성스러운 꽃, 우담바라는 오늘 내 손에 의해 속속 피어나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기 위해 절 집에서는 연등을 만든다. 먼저 철사로 만든 등에 흰 속지를 바른 다음, 연잎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붙이는데 꽃봉오리를 만들기 위해 서로 감싸듯이 해서 붙인다. 차츰 아래로 내려오면서부터 간격을 조금씩 넓혀가며 붙여야 소담스러운 꽃이 된다. 마지막 마무리로 너 댓 잎의 초록잎을 돌려가며 붙이면 드디어 하나의 연등이 완성되는 것이다.
 처음 등을 만들 때 속지나 연잎에 풀칠 해주는 작업을 했다. 풀 바르는 일도 쉽지가 않았다. 얇은 종이에 풀을 너무 적게 바르면 붙여지지 않고 찢어지기도 한다. 또한 많이 바르면 모양이 고르지 않아 꽃 모양이 밉게 나온다.하여 붓 끝으로 스치듯이 연잎 끝부분에 살짝 바르는게 요령이다. 솜씨 좋은 이가 만든 연등은 이쁘다 못해 아름답다. 꽃이 좀 덜 피어도 예쁘다, 잘한다 하는 일이지만 아직도 서툴기만 하다. 눈썰미도 없고 솜씨조차 없는 내 자신에게 혀를 차면서도 내 모든 신경줄과 마음을 합쳐 연등을 만든다.
 잠시 쉬었다 하라며 차담상이 들어왔다. 녹차에 인절미, 수박까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지난해 여름 산사에서 보낸 4박 5일의 수련회가 생각나서다. 수련회 3일째 되는 날, 지도 법사님이 오늘은 차담상이 나올거라고 하셨다. 절 집에서 차담상 이라면 차는 물론이고 떡이며 과일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찐 감자 두 개와 시중에서도 제일 싼 요구르트 한 개였다. 스님들이 농사지은 감자라며 자랑을 하셨다. 내심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햇살이 쏟아진다. 산들바람이 분다. 어제 내린 비로 수목은 더욱 청정해 지고 나무 잎새에도 윤기가 흐른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다. 순간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또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 있음에도 감사하고 싶다. 지금 내 손에 묻은 붉은 물감이 될 수 있으면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우리들이 만든 등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담아 등을 달고 불을 밝힐 것이다. 문득 ‘안타라의 등불’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 인도에 안타라 라는 여인이 있었다. 안타라는 부처님께 등불 올리기가 소원이었지만 가난한 그녀로서는 등불을 밝힐 수가 없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기름집 주인은 한 등에 백 푼인 기름 값을 한 푼만 받고 기름을 주었다. 이번에는 등이 없었다. 안타라는 날품을 팔아 겨우 작은 등 하나를 마련할 수 있었다.
 크고 호화로운 등뿐이었다. 안타라는 구석진 곳에 정성껏 마련한 소박한 등을 달았다. 아무도 그 등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었다. 밤이 되었다. 거센 바람이 불어 크고 값비싼 등들은 모두 찢어지고 불이 꺼졌다. 그러나 안타라의 등불은 그대로였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불이 꺼진 등불은 돈과 허세만 들였지만 안타라의 등은 지극한 공경과 정성이 담긴 등이기에 견딜 수 있었다.”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떨구고 안타라는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불기 2548년 부처님 오신날이면 절 집에서는 여러 가지 봉축 행사를 할 것이다. 특히 절 입구에서부터 마당과 법당에까지 달아 놓은 등은 아름답다 못해 마치 선계에 들어가는 것 같다. 해질녘 무렵이면 초를 꽂고 불을 붙인다. 비로소 생명을 얻은 연등은 세상의 모든 번뇌 망상을 떨치며 환희의 춤을 추는 것 같다. 푸른 나무들, 독경소리, 등불 앞에서 쉼 없이 절을 하며 기도하는 사람들. 지훈님의 ‘승무’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할말을 잊는다.
 이제 우리모두 한번쯤 안타라가 되어 마음의 등불을 켜보자. 푸른 오월은 사랑과 감사와 존경의 날이 더해 자비의 달이 아닌가. 우리들 가슴에 자비의 등불을 밝힐 수 있다면 조금은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내가 먼저 따뜻한 가슴으로, 따뜻한 손을 내 밀어 보자.
관리자 기자  seok@ikw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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