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만큼 겸손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의나 겸손하면, 물론 일본을 친다. 상대에게 땅에 닿을 만큼 머리를 굽히고, 말끝마다 긍정과 존경 일변도의 그들 말투는 상대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런 그들이 우리나라를 무력침략해 강점한 것을 보면 속과 겉이 다르다는 것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일본의 겸손한 것 같은 외형은 가슴에 비수를 품고, 남의 약점을 칠 기회를 찾기 위한 이른바 호시탐탐에서 온 것이다,는 어느 재일동포의 얘기가 우스갯소리마는 아닌 것 같다.
또 하나의 나라 중국은 스스로 대국적이라고 으스댄다. 이름부터가 가운데 중이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에서 국명을 지은 중국의 자존심은 대단하다. 대국적이면 관용과 포용과 사랑의 의미가 저변에 깔려 있다.
그러나 중국은 예로부터 왕서방으로 불렸다. 장사에서는 뒤질것이 없다는 것이 왕서방의 유례다. 동서냉전 시절 소련이 중국에 대고 실용주의적 자본주의라고 삿대를 든 것도 이러한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국에 작은 나라 한반도, 둘로 쪼개다보니 초승달만해진 남과북은 죽이니, 살리니, 집안 싸움에 시달리고, 이와중에 겉과 속이 다른 일본과 실용주의 중국이 우리의 가슴팍을 향해 돌려차기를 하고 있으니, 작은 나라 한반도가 건재할 리가 없다.
정체성 시비가 발단이 된 이 나라는 아직도 이념 논쟁이다. 남북한 한계선에는 서로의 가슴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여당은 늘 야당을 씹고, 야당은 늘 여당을 씹기에 세월을 허송한다. 이 판국에 국민 감정까지 패가 갈리고, 일부 언론은 장단을 맞춰 춤을 춰댄다.
슬픈 나라, 슬픈 국민이다
관리자 기자 seok@ikwb.co.kr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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