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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시론] 수산나 여사의 경우
이강룡 시인
본지 논설위원
2011년 09월 27일(화) 01:50 [경북중부신문]
 

ⓒ 중부신문
 새로운 지식의 수명이 날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우리가 공부할 때만 해도 호주머니에 분필 하나 넣어 가지고 교실을 나드는 교수들이 적지 않았다. 새로운 내용 없이 똑 같은 강의를 반복하고 있으니 강의안이 필요 없었고, 청산유수 같이 흘러가는 그 강의가 오히려 경륜이요 권위인 양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의 지식은 오늘 강의실에서 배우고 있는 것까지도 내일은 쓸모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비단 지식의 수명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반만년이란 유구한 역사와 함께 우리 민족의 대명사로 불리던 ‘배달겨레, 백의민족’이란 명칭 또한 근래 불과 수 년 만에 그 가치가 퇴색되어 버렸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이민족(異民族) 한국인의 수가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도 이제 ‘다문화 사회, 다민족 국가’로 변하였다. 북쪽에서는 지금도 자기네가 아쉬울 때엔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우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과거 우리 정치권에서는 좋지 않은 국가적 사안이 발생하면 곧잘 ‘민족’을 앞세워 단결과 협조를 구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애국’도, ‘국민’도 다른 차원에서 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애국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시금석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수산나 여사의 경우다. 그녀는 1936년 런던에서 출생했다. 한 집안에서 영국 정부의 장관을 2명이나 배출할 정도의 명문가 출신에다 세계의 명문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인의 안일을 과감히 버리고 1959년 피아노 일곱 대를 화물선으로 운반하여 부산을 거쳐 대구에 왔다. 꿈 많은 묘령(妙齡)이었다. 만리타국 낯선 땅에 터를 잡아 50년을 넘게 사는 동안 한국을 알리는 책 두 권을 집필하였고, 어렵던 시대에 양재학원과 편물학원을 운영하여 가난한 시민들의 경제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결코 넉넉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쓴 책에서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자술하고 있다. 그녀의 갸륵한 삶에 감동한 대구시에서는 그녀의 대구 이주 50주년을 기념하여 대구시민증을 수여하고 표창하여 그 공로를 기린 바 있다. 명문가 출신으로 세계적 명문대를 졸업하고 자기 몸이나 일가의 안일을 택했다면 자신의 조국 영국에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히 일신의 안녕을 택하지 않고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신음하는, 지구상에서도 가장 피폐한 후진국에 와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며 그 속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아 왔다.
 그녀의 족적(足跡)을 더듬으며 이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들어와 이웃에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옳은가.’를 되물으며, 파란 눈의 이방 여인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명한 대답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얼굴 색깔과 옷매무시를 가지고 ‘한국인, 대한국민’을 규정하던 시대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주 빠른 시간 동안에 저만치의 과거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는 큰 물줄기가 우리 옆을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이 도도한 시대의 흐름 앞에서 우리도 이제 ‘애국’, ‘국민’이란 용어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할 것 같다.
 열린 가슴으로 이웃에 사는 이민족, 다문화 가정을 따뜻하게 감싸주어, 그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이 진정 아름다운 나라임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고,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나의 나라’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할 것 같다. 그들도 함께 행복한 삶을 꾸려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일부러라도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요 의무이며, 이 작은 일 하나가 새로운 애국의 길을 여는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남민정 기자  da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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