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태어나서 가는 길이 있다. 더러는 날 때부터 정해진 길을 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 사람이 가는 길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얼마의 큰 묶음으로 묶어 볼 수는 있다. 군인의 길, 경찰․소방의 길, 교육의 길, 기업의 길, 농․공․상․수산업의 길 등을 우선 쉽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5일, 초대 주월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이 노환으로 별세하여, 28일 오전 7시 육군장으로 장례를 엄수하였다. 향년 87세. 한 사람의 장군이 전역한 지 40년이 지난 뒤, 그를 보내는 자리에 그의 인격을 흠모하여 500여 명의 내빈이 모였다. 그들은 안장식전에서 충!성!의 구호를 외치며 엄숙한 경례로 그를 보냈다. 그 모습은 그의 삶이 얼마나 올곧은 삶이었던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 것이다.
고 채명신 장군은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維新)을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대통령과 그의 친분으로 보나 그의 강인하고 올곧은 군인정신으로 보나, 탁월한 지휘력으로 세운 전공으로 보나 그는 당연히 대장으로 진급하여 참모총장이나 각료나 또는 그 이상의 직함으로 당세의 영예를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신념에 끝까지 충실했고, 마침내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그 때 그가 ‘우선 먹기엔 곶감이 단’ 길을 택했더라면 어땠을까? 모르면 몰라도 지금의 영웅 채명신은 간곳없고 범부 채명신만 살아서 덩그렇게 좋은 묘소에 누웠을 것이다. 그는 에비역이 된 뒤로도 사회 각계에 보람 있는 일을 계속함은 물론 특히 기회 있을 때마다 월남전에서 전사한 병사들이 묻혀 있는 서울 국립 현충원 제2묘역에 함께 묻히기를 원했고, 그 뜻을 유언으로 남김으로써 그는 생전에 피땀을 나누며 사랑을 나누던 전우들과 함께 묻혔다. 그의 묫자리 역시 국가에서 주는 장군에 대한 예우는 전혀 없었다. 사병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3.3㎡에 그들과 똑 같은 크기의 묘비에 ‘육군 중장 채명신의 묘’였다.
그가 몸으로 보여준 ‘장군의 길’은 무엇이었던가? 그에게는 애초부터 개인의 영달 같은 것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죽음을 초월하고 철모도 쓰지 않은 채 야전을 누비면서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는 거야. 떨지마”라고 외치면서 부하들을 격려하고 독려한 모습이라든지, 미국 언론으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승전보”라는 찬사를 듣고 ‘살아 있는 군신(軍神)’이란 칭호를 받은 것만 봐도 그는 ‘장군은 전장(戰場)에 있어야 한다.’는 소신 하나로 살았던 것 같다.
‘군군신신부부자자’란 말이 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질 때 비로소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다. 오늘 우리가 그와의 영별을 아쉬워하는 이유도 이 땅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장군답게 살다 가는 모습을 실천해 보였음에 있을 것이다. 한데도 지금 우리나라에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대표적 집단 셋이 있다. 첫째는 국회다. 입만 열면 민생을 위한다 하면서도 그들에게 민생은 안중에도 없음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정말로 국민의 이름으로 국회를 해산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둘째는 고집불통의 정부다. 정치적 포용력은 없고 마이웨이만 하고 있다면 어쩔 것인가. 셋째는 법원이다. 살아 있는 법은 사회 정의 실현의 마지막 보루다. 사람은 모두 내 입맛에 안 맞으면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욕을 하고 있긴 하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법은 없다. 요즘에 와서 유독 다수의 상식에 어긋난 판결이 비일비재함은 무엇인가? 냉철해야 할 판사가 자신의 이념, 집착의 도가니에 빠져서 판결을 그르치는 일이 있어서는 정말로 곤란하다.
어찌어찌하다 조금이라도 이름을 얻으면 “한 자리”에 눈이 어두워 날뛰다가 진흙탕에 빠져서 살아온 일생에 똥칠망칠 다하고 얼굴 싸매고 들어앉는, 그래도 기어이 그 진흙탕 속으로 굴러들어가지 못해서 안달복달하고 있는 서글픈 군상들이 넘치는 현실이기에, 고 채명신 육군 중장을 이렇게 아쉬워하고 그리워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를 보내며, 장군의 길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지금은 ‘나의 길은 잘 가고 있는 것인가?’라고 되짚어 볼 때이다. 며칠 남지 않은 저물어가는 한 해를 앞에 놓고 겸허하고 진지하게 나부터 돌아보고 내 길을 점검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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