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형식은 초명이 극이며. 이회산 혹 이삼룡이라는 별명을 쓰기도 했다. 허형식은 시산 허필의 둘째 아들로, 형은 보이며, 아우는 규식이다.
허형식의 아버지 허필은 1915년 백형 허형, 조카 일창 발 일헌 규와 함께 도만하여 통화현에서 왕산 유족과 함류하여 살았다. 1920년 일본군의 간도출병 직후 종형 허겸과 왕산 허위의 유족, 그리고 형 허형 등과 함께 서간도를 떠나 일제의 탄압이 미치치 않고 동·남만보다 남한출신 동포들이 많은 북만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 후 허필은 가족을 이끌고 요녕성 개원현 이가태자를 거쳐 흑룡강성 오상현으로 이사했다가, 다시 1929년 봄에는 하얼빈 부근의 빈현 가판참으로 이주하였다.
혀형식은 1929년 중반부터 중국 공산당 북만특위 및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허형식은 1930년 초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원회 당원으로 입당하였다,. 이때부터 북만의 한인 농민들을 상대로 대중사업을 전개하였다. 허형식은 1930년 5월 1일 ‘붉은 5월투쟁’에 참가하여 하얼삔 일본총영사관 습격을 주도하였다.
1930년 후반경에는 대중운동을 주도하다가 중국 공안당국에 피체되어 공산분자라는 혐의로 심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31년 12월 만주성위원회에 의해 구출되었다.
1932년 1월 허형식은 만주성위 빈현특별당지부 선전우위원의 직책을 맡아 빈현 일대에서 반일동맹회·자위대 등 항일단체들을 조직하여 반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또 1933년 3월에는 탕원현으로 가서 항일유격대 창건을 지원하고 나아가 1,400여 명의 반일회원을 결집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 허형식은 주하현으로 돌아가 대충 조직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1933년 10월 주하반일유격대가 창건되자 혀형식은 항일선전과 항일투쟁의 고취를 통해 항일 유격대의 활동을 지원하는데 노력하였다. 이리하여 허형식은 1934년 6월 동북반일유격대 합동지대 제3대대 정치지도원이 되었으며, 그 해 가을에는 제1대 대장이 되었다. 이때 그는 이희산이라는 가명을 썼다.
1935년 1월말 당세의 확대 및 유격구의 확대에 힘입어 합동지대는 지방천년의용군을 흡수하여 동북인민혁영군 제3군 제1독립사로 발전하였다. 허형식은 제3군 제2단의 단장이 되었고, 동년 9월 제3군 제3단 정치부 주임, 1936년 초 제3군 제3사 정치부 주임이 되었다.
◇ 자료제공: 구미 왕산기념관(465-6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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