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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부논단 # 길
김 기 옥
2005년 03월 14일(월) 04:03 [경북중부신문]
 

ⓒ 중부신문

본지 편집위원

 벌써 두 개피째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담배는 쏙쏙 잘 타들어 간다. 친정 부모님 산소다. 어쩐 일인지 올해에는 네 식구뿐인데도 함께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이렇게 깊은 겨울에 오게 됐다. 산소에 오는 날 만큼은 모두 참석하는 것이 우리집 불문율로 되어있다.
 정성으로 준비한 음식들을 차리고 향을 피웠다. 남편은 담배 두 개피에 불을 붙인 후 가지런히 놓았다. 언제나 가슴에 화를 담고 사시는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담배를 가르쳤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담배를 낙으로 사셨다. 술을 올리고 절을 드렸다.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가 제때 오지 않아 속이 타셨을까? 담배는 시원스레 잘도 탄다.
 이곳에만 오면 남편은 언제나 말이 많아진다. 정남향에 흔히들 말하는 배산임수가 잘 갖추어져 있어 좋은 집에 모셨다며 흐뭇해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영원한 집이 아니지 않느냐며 중얼거린다. 선산이 아닌 공원묘지이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신지도 벌써 이십여년이 다 되어간다. 당시만 해도 선산이 아닌 공원묘지에 산소를 모신다는 사실이 어쩌면 오늘날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처럼 간편함과 소홀함 같은 것은 아닐까. 왠지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고 인식이 되던 때였다. 집안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선산이 있는데 왜 굳이 공원묘지로 가야하느냐. 집안의 수치 아닌가. 딸자식이라 해마다 벌초며 성묘를 어떻게 해. 차라리 모든 관리를 깨끗이 해주는 곳이 후일에 가서 보면 더 나은 일이 아닌가.
 선택권은 나와 남편에게 돌아왔다. 남편은 강력히 후자를 주장했다. 여기저기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때 남편은 아버님 옆자리에 후일 어머님 모실 것을 생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집안어른들의 주장대로 선산에 두 분을 모셨으면 어쩌면 우리내외 아이들하고 오늘처럼 찾아올 곳이 없어져버린지도 모를 일이다. 몇 년 전 공단부지로 모두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하여 남편은 자기가 아주 탁월한 선택을 했다며 흐뭇해하는 것이다.
 산소는 언제나 손질이 잘 되어있다. 남편의 생색이 아니어도, 아늑하고 포근한 것이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든다. 생전에 부모님이 사시던 집도 정남향이다. 정남향에 집을 두고 사는 것은 웬만한 복이 아니면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러한 복도 어머니 옆 다음 분은 얼마 누리시지 못할 것 같다. 괸리비를 내지 않아 무연고처리 될 수도 있으니 조치를 취하라고 팻말에 적혀있다. 나는 내가 괜히 무엇을 잘못하기라도 한 듯이 아이들 보기가 민망했다.
 아까부터 내 눈치만 살피던 작은 아이는 ‘우리 엄마 또 우신다. 울보야. 울보.’ 하며 나를 놀리려든다. 이곳에만 오면 왠지 모를 서러움이 가슴까지 차오른다. 아이들 말대로 나는 울보다. 경사스러운 결혼식에 가서도 눈물이 난다. 햇살이 좋으면 좋은대로, 어느 때는 바람이 너무 불어서 울고 때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울컥울컥 치미는 울음.
 몇 년 전일이다. 혼자 운전연습 한다며 기분좋게 온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나는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길 옆 구멍가게에서 소주며 담배며 과자를 샀다. 그때가 여름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 왔다며, 운전을 해서 여기까지 왔다며 자랑스레 말씀드렸다. 매미가 청승스레 울고 있었다. 매미울음 소리를 듣다가 나는 그날 엎드려 통곡을 했었다.
 얼마를 울었을까. 울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비온 뒤의 맑게 개인 하늘같았다. 그러나 딱히 통곡을 하며 울어야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었다. 괜히 겸연쩍었다. 나는 내 울음의 이유가 매미 때문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산 속에는 여전히 나 혼자였고 숲은 고요했다. 한가로운 여름날 오후였다.
 그해 여름 나 혼자 가서 울었다는 사실은 지금껏 나만의 비밀이다. 어쩌면 그것은 식구들에게조차 내 속내를 보이고 싶지 않은 언제나 목말라 하는 외로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나는 내 나이를 종종 잊고 산다. 세상에서 나는 혼자라고. ‘찾아갈 친정이 없는 고아랍니다’ 하며 내 철없음에 스스로 혀를 툭툭 차면서도 이 말을 되뇌인다. 허나 어쩔 것인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가 보고 싶고 햇볕 따사롭던 옛날 집이 그리운 것을.
관리자 기자  seok@ikw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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