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세 미혼의 나이로 홀홀단신 미국으로 떠날 때는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당시만해도 제 고향 진평동은 허허 벌판이었지요. 미국으로 무작정 떠나는 딸을 강 건너 보내놓고 담뱃대를 무신 아버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기만 합니다.”
망망대해의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간 억척 소녀, 박계화 회장이 39년만에 백만장자가 되어 잠시 금의 환양했다.
미국에서 일군 돈을 고향에 바치기 위해서다. 그 첫 번째 사업부터가 너무나 인간적이다. 가슴으로부터 진한 애향심이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19일 구미시 인의동 택지 지구내에서 열린 지하1층, 지상8층 연건평 1600여평의 박재달타워 빌딩의 기공식장에서 박회장은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행사에 참석한 시, 동단위 기관장들 역시 숙연한 분위기에 압도되어야 했다. 무에서 유를 만든 박회장의 억척 인생은 바로 낙동강의 기적을 이룬 구미공단의 축소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4월 착공에 들어가 내년 3월 빌딩이 완공되면 박회장은 이곳에 교사 자격증이 있는 미국 현지인들을 교사로 고용, 살아있는 영어를 국제도시 구미시민들에게 보급할 예정이다. 컴퓨터 교육을 통해 첨단산업 도시에 나름대로 기여하겠다는 당찬 포부도 세워놓고 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컴퓨터 용역회사인 ‘데이타 퍼스픽’을 운영하고 있는 박회장은 이곳에서는 컴퓨터 산업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사가 한인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컴퓨터와 교육에 관한 한 절대적이다.
1976년 회사를 설립한 박회장은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물론 시정부를 상대로 용역사업을 펼치면서 주목을 받았다. 컴퓨터 학원 겸 학교도 설립한 박회장은 한국에서 온 교포들이 터전을 잡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도미한 교포들은 대부분 고학력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언어소통이 여의치 않아 시련을 겪어야 했다. 박회장은 이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과 아울러 언어 소통을 도와주면서 사회로 나가는 창구역을 담당했다. 이곳을 거쳐나간 교포수만도 2만여명, 이들은 정부나 기업체의 컴퓨터 총괄책임자로 자리를 잡아 나갔다.
1980년 설립된 한인학교에 2만불 상당의 컴퓨터 일체를 기증하면서 교육사업에 심혈을 기울인 박회장은 한인상공회의소 초대회장, 여성경제인 협회 위원, 한미 민주당 창립 홍보위원으로 돋보이는 활약을 해왔다. 한인 최초로 에플 컴퓨터 교육딜러를 할만큼 컴퓨터에 관한한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긴 박회장은 한인가정과 학교에 저렴하고 질좋은 컴퓨터를 보급함으로써 컴퓨터 전도사로서의 명성을 남기기도 했다.
“돌아가신 아버님(박재달 선생)께 늘 죄송했습니다. 고향에 교육사업을 첫 번째 사업으로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도 봉사정신을 몸소 가르쳐주신 아버님의 뜻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진평동의 고향하늘을 바라보며 박회장은 교육사업에 이어 2차사업으로는 인의동에 ‘박재달 메디칼 센터’를 세워 의료봉사 사업도 펼쳐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울에 있는 중앙고속 통상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도한 박회장은 수익금을 회사 사원들이 분배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환원사업도 펼치고 있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26세의 나이로 태평양을 건너가 맨주먹으로 오늘의 성공신화를 만든 박회장, 상전벽해의 기적을 이룬 고향, 강동지역에 박회장은 교육과 의료봉사의 거룩한 정신을 씨 뿌리기 시작했다. 일요일인 20일,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에도 이미 고인이 되신 부친이 그립다며, 효녀로서의 고운 심정을 그려냈다.
한편 박재달 타워빌딩은 건축사무소 선진건축(소장 이영환)이 설계하고 향토기업 세원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관리자 기자 seok@ikwb.co.kr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