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랑을 낳고,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더 나가면 사랑으로 일어서면 사랑으로 부흥하고, 폭력으로 일어서면 폭력으로 망한다는 말도 있다.
폭력의 상대적인 개념인 사랑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사랑은 특히 여성으로부터 나온다. 여성의 중심에 있는 모성애는 인류를 망하게도 했고, 흥하게도 했다. 모성을 잘 따르는 자식이 외도하는 일이 없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이다.
갈수록 세상이 횡포화되면서 사랑의 중심인 모성애의 소중함이 갈수록 최종가를 치고 있다.
최근들어 일진회니 뭐니 하는 학교 폭력써클이 방송은 물론 신문지상의 활자를 파고들고 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들의 아름다운 동심이 멍들고 있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폭력을 행사한 청소년이나 당한 청소년 모두 이 사회가 낳은 희생양인 점을 생각한다면 잠을 이룰 수 조차 없으며, 여성단체 일원의 한사람으로서 수치스러움까지 절감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각성해야만 한다. 오늘의 청소년 문제의 책임이 학교에만 있다면 가정교육을 떠맡은 여성으로서 책임회피다. 학교나 가정이 이들 문제를 사법 당국에만 위임한다면 이는 몰염치한 발상이다.
나무는 햇볕만을 받고 자랄 수 없다. 햇볕이 있어야 하고, 흙이 있어야 하고, 수분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들 요소중 한 요소가 불량하다면 나무는 시들다가 고사하고 마는 것이 나무재배의 기본 상식이요, 생명의 기본 원리인 것이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학교 폭력문제를 바라보면서 우리 여성은 자녀들에게 얼마나한 양질의모성애를 동심의 가슴에 뿌렸는가. 사랑을 흠뻑 뿌렸다면 사랑을 낳았어야 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 폭력의 행태가 일어나고 있다면 그 문제의 중심에 어머니로서의 사랑이 빈약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보아야만 한다. 물론 모든 책임을 우리 여성에게만 돌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학교도, 사회도, 정부에게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신성한 학원에서 폭력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일부 모성들의 경우 모든 책임을 학교나 사회에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전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모성애를 얼마나 정성껏 자녀들에게 심어주었는가를 돌아보아야만 한다. 공동의 책임의식을 갖자는 말이다.
사랑은 효에서 비롯되고, 효는 모성애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은 자타가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각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대대적인 폭력써클 색출작전(?)이 요란한 요즘, 경찰서 대문으로 들어서는 이른바 멍든 동심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을 보면 안다고 했지만, 떡잎으로 피어보지도 못한 동심들을 철창으로 밀어넣으면서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을 찍는 최근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동심이 울고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행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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