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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중부시론] 호국보훈! 6.25 형곡리 미군오폭 참상
이규원
본지사장
2016년 06월 22일(수) 15:03 [경북중부신문]
 

ⓒ 경북중부신문
 무릇 동서고금의 역사를 회고해 보건데, 국운의 흥망으로 각 나라마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운이 흥했을 때 각 민족은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고 그것이 쇠퇴했을 때 몰락과 파탄이란 비극을 겪어야 했다.
 우리 민족이 지나온 길도 이 도도히 흘러가는 세계사의 물결 앞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우리 민족사의 경우는 국운의 융성으로 인한 기쁨보다, 내우외환에 의한 쓰라린 슬픔이 더 많았음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다.
 멀리까지 회고하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난과 상처를 안겨다 준 현대사의 한 부분 6.25동란을 우리 모두는 아픈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 동족상잔의 비극은 말과 글로써 어찌 다 형언 할 수 있으리오. 이제 와서 형곡동의 슬픈 한 역사의 토막을 떠 올리게 되어 만시지탄의 비통함을 느낀다.
 동란 당시, 형곡동에서 일어난 처절한 집단 참상과 그로 인한 위령탑건립에 관한 내용이다. 당시, 형곡동은 궁핍한 시골 산촌으로 마을 주민 모두가 농사만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시운이 불행하여 이 마을에 갑자기 짙은 음영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동란이 발발되던 그 해 여름, 이 마을에 특수한지형(형곡동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외딴 마을이라 피난하기에 알맞은 지형임)으로 인해 수천 명의 피난민들이 만호처럼 이곳으로 밀려 들어와 목숨을 부지하던 터였다. 마을의 토착민과 피난민들은 들여오는 포성에 숨죽이면서 전쟁이 끝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극의 흑운은 이 마을 전체를 온통 뒤덮기 시작했다.
 때는 1950년 8월 16일(음력 7월 2일)오전 11경이었다. 기체 불명의 폭격기 몇 개 편대가 수 시간 동안 이 마을을 맹폭하는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마을은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했고, 아비규환의 처절한 참상은 아무리 통곡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폭격이 끝난 직후, 다시 제트기 몇 대 편대가 마을을 향해 또다시 기관포 사격을 가해 수많은 주민과 피난민들이 집단 떼죽음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집안이 전부 몰락된 경우도 있었으며 마을과 인근 산야가 벌집 쑤셔 놓은 듯 참혹했다고 전한다.
 더욱이 이 피폭자들은 무장한 군인이 아니라 모두가 순수한 민간인뿐 이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사망자의 경우 동사무소에 공식 신고댄 형곡동 사람만 130여명(당시 이장 김경환 증언 )이라고 한다. 난리 중의 급박한 정황으로 보아 미처 신고 되지 않는 사람까지 고려하면 사망자 수는 통계적으로 기록되지 않아, 이사실까지 고려한다면 수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전쟁이 끝나고 포성이 멈춘 지 65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눈물도, 슬픔도 모두가 망각의 저 편으로 조금씩 사라져갔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형곡동의 뒷산에는 올해에도 온갖 야생화와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지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그 날의 끔찍한 참상은 이 마을 주민 모두의 가슴 속에 단근질 자국처럼 아프게 새겨져 있으리라. 사람의 피가 흐르는 이상, 어찌 비명횡사한 부모, 형제, 친지들의 참상을 잊을 수 있겠는가? 미물도 제 어미와 새끼를 잃으면 슬피 울거늘, 하물며 사람인 저희야 얼마나 각골통한의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 왔겠는가?
 이제 당시 폭사되거나 몰살된 마을 희생자들에 대하여 그 넋을 위로하고져 뒤늦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생각은 다름 아닌, 비명에 간 혼령들을 위해 진혼의 위령탑 설립에 관한 사항이다. 이 위령탑의 건립은 단순한 치장이나 장식이 아니라, 유가족 모두에게 절실한 문제다. 역사는 흘러가도 그 교훈은 남는다.
 만약, 이 탑이 세워지게 된다면 그것은 진혼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란을 경험하지 못한 후세의 자손들에게도 소중한 교육적 가치로 인식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6.25사변(형곡동의 참상)의 그늘 속에 망각되어 왔던 유가족들의 아픈 상처가 조금이나마 위로되고 치유되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끝으로 한국전쟁기인 1950년 8월 16일 경북 구미시 형곡동에 양민들에게 가해진 미군 오폭사건에 대해서는 1992년부터 국가기관을 또는 정부를 상대로 하여 18년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진실규명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구미시의 도움으로 2012년 4월 30일 형곡동 위령탑 추진위원회가 설립되었고 4년여의 진통 끝에 위령비 건립 사업을 위한 추진을 박차를 가하고 되었으며 이 사업에 추진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기울려주신 구미시와 관계부서, 위령탑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손홍섭, 박교상 시의원 외 추진위원 여러분께도 유족의 입장에서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참고: 사변 당시 형곡동의 이장이신 김경환님 및 나의 선친(이종록)으로부터 6.25사변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이야기 들은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92년부터 2010년까지 정부를 상대로 하여 18년 만에 국가기관인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으로부터 6.25당시 형곡리(사창, 시무실)의 양민들의 억울한 죽음이 미군들의 오폭임으로 2010년 10월 22일 진실규정이 밝혀졌다.(진실규명 다-9042 규명신청자: 이규원 )
중부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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