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직지사 부주지로 계시는 정신스님이 오래전 도리사 총무로 계실 때 들려주신 말씀이다.
사람의 어원은 순수한 우리말이지만 원래는 한자에서 빌려온 말인즉, 넉사(四에) 볼람(覽으)로 사람을 표현한다고 했다. 넉사는 4가지이며 볼람은 본다는 말로 즉 4가지를 볼 수 있는 자가 사람이라는 말이다.
첫째는 자신을 보며 둘째는 가족을 보고 셋째는 이웃을 볼 수 있으며 넷째는 자연을 볼 수 있어야 사람이라고 했다.
요즘 와서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 되기는 쉬워도 사람노릇하기가 쉽지 않음을 말씀하신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자신을 보고 가족을 본다는 구절에서 자신과 가족과의 관계에서 부끄럽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많은 것이 변화해 간다. 돌이켜보면 옛날과 비교하여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물질만능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으며, 풍족한 사회만큼 유교적 개념에서 계승된 가족에 대한 가치관도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특히, 우리의 전통적 가족관은 유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유교는 조선시대를 이념적으로 지배해 오며 우리의 가족주의를 형성하는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시 말해 나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출발점이며, 공동체의 구성원임은 부정할 수 없으나, 나의 기본적인 단위는 가족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가족은 가까운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부모자식. 형제간의 생활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가족을 바탕으로 한 혈연집단의 본거지를 우리는 가정이라고 하며, 가정의 공동체가 곧 인류의 시원이고 우리의 출발점인 것이다.
따라서 자신을 보며 가족을 본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인간의 도덕적, 윤리적 요구인 것이다. 가족을 만드는 윤리적 기본조건이 가정을 만드는 것이며 결혼이라는 전제가 가정을 만든다는 것은 일반적 상식이다.
인간은 누구든 행복하길 원한다. 때가되면 짝을 찾아 원만한 가정을 꾸려가는 것이 관습이다. 결혼이 인륜지 대사인 것도,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할 최고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젊은 세대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함은 혹시 사람으로서 윤리적 책임을 회피한 것 아닌가하는 마음에서 걱정이 되는 것이다.
2013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조사에서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이 62.0%로써 여전히 높게 나타났지만, 결혼을 꼭 할 필요는 없다는 응답도 38.0%에 달해, 젊은이들의 결혼관에 대한 미래가 밝지 못함을 보고 있다.
저 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현실에서 정부대책이 미흡하며, 취업의 어려움과 불투명한 미래 그리고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불안감이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이 가족을 만드는 과정인 결혼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젊은이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와 결혼기피현상은 사회 전반적인 환경 변화와 함께 당연할 수 있으며, 더불어 경제적 문제가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삼십 팔세면 퇴직해야하는 삼팔선, IMF 이후 구조조정과 계속되는 불황으로 취업의 어려움과 고용의 불안정을 풍자한 신조어와 함께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삼포세대가 낯설지 않은 지금, 젊은이들의 결혼회피를 무작정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나의 존재 이유는 부모님이듯이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회피한다면 그것보다 큰 불효는 없으며 인구감소로 이어지는 사회전반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장기적 침체로 진입한 우리경제를 일본이 겪고 있는 ‘잃어버린 20년’의 시작 시점에 진입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긍정을 향한 내일의 삶에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이며, 그 자극이야 말로 삶의 의욕인 것이다.
창조경제. 경제민주화도 따지고 보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자극이다. 그러므로 행복하고 사람이 살만한 세상에서 사람노릇을 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모두가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인드를 가지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마땅히 가져야하는 책임인 것이다.
진실한 사랑으로 가족이 되고 의지가 되며 행복을 찾아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결혼을 어느 누가 기피할 것인가? 어차피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는데, 이 좋은 가을에, 하고 후회하는 것이 그래도 덜 후회스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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