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태어나고 병들고 늙고 죽어가는 생로병사의 인간 존재는 어떻게 보면 허무하리만큼 무상하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시절의 여자동창생은 파릇한 모습을
2005년 07월 29일(금) 10:41 [경북중부신문]
이러한 인간은 정의와 진실 앞에서도 불완전하기는 매한가지다. 정의와 진실의 개념이 시도 때도 없이 변화하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제아무리 깨끗하다고 자처한다고 한들 미모의 여성을 앞에 두고 혹해보지 않은 남자는 없겠으니 말이다. 이것도 일종의 죄가 아니던가.
너무나도 완벽하려고 하면 불합리가 될 수 있다. 그야말로 명작을 쓰겠다는 야심을 품는 순간 명작의 꿈은 불거품이 되고, 이빨을 앙다물고 진실, 진실을 외치는 순간 진실은 도망가고 마는 것이 인간사의 풍경들이다. 도청으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다. 권력을 쥐기 위해 상대의 약점을 몰래 훔쳐온 도청 정국이 국민적 여론을 형성하면서 국민간의 불신도 팽배해지고 있다. 상호주의가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득세한다. 이런 판국이고보면 마음속을 터놓고 그야말로 흉금없는 얘기를 나눌 상대가 우리에겐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 일부에서 공소시효니, 특정기업의 신인도 추락으로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느니, 등의 이유를 들어 웬만큼한 선에서 덮어두자는 소위 관용과 아량론이 부상하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아량과 관용과 용서의 질서가 존재한다. 실수로 부정을 했느냐, 의도적이었느냐의 사이에서 실수한 경우는 아량과 관용의 덕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남을 위해할 의도가 있다면, 아량과 관용과 용서는 개입되지가 않는다. 개입되어서도 안된다.
도청은 부정한 방법으로 남의 약점을 잡기 위해 수단시 되었다는 점에서 용서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통신보호비밀 관련법 등을 따지고, 공소시효 운운하며 덮어둘 사안이어서는 안된다.
더군다나 도청이 한 나라의 운명을 갈라놓았다는 점에서 사건은 발본색원되어야 한다. 수사를 하면 특정기업 신인도가 떨어진다거나, 어느 어느 권력이 설자리를 잃는다거나 하는 이유로 구렁이 담넘듯 해서도 안된다.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지금, 이 문제를 깨끗이 풀지 않는다면, 2007년 대선의 주요 메뉴는 도청 사건이 될 것이다. 1시간 정도 수술하면 고칠수 있는 병이었는데 시간을 지체함으로서 생명까지 위협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불완전한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용서나 아량을 배풀자는 식이 이번 도청사건에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도청사건의 주역들은 의도적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관리자 기자 seok@ikwb.co.kr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