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은 김일성과 마오쩌둥, 스탈린이 은밀하게 모의하고 계획한 세계전쟁사에 처음 있는 동족간의 비참한 전쟁이였다.
지난 1950년 새벽 미명에 242대의 소련제 탱크, 170대의 전투기와 7개 사단의 병력으로 북한이 남침을 자행했다. 그 날은 일요일, 나라를 지켜야 할 우리 장병들은 휴가와 외출로 전방은 무방비상태였다. 전쟁 발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우리 정부는 수도를 대구로 옮겨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전투에서 북한군이 흘린 피가 강물을 빨갛게 물 드렸고, 유학산과 다부동 일대에 주 저항선을 형성했던 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기록되었다.
그 당시, 백선엽 장군이 이끈 사단사령부를 선산군 장천면의 오상중학교 본관에 두고 작전에 임했다. 백 사령관이 지휘한 1사단은 다부동 전투에서 8,000명 가량의 병력으로, 북한군 2만명의 총공세를 물리치고 승리했다. 백 사령관의 지혜로운 작전은 북한군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를 사수하는데 성공했다.
다부동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한 백 장군의 전적비가 다부동 산기슭에 세워져 있었는데 도로 확장으로 어디론가 옮겨졌다. 한국군 야전 사령관으로 평양 탈환에 진두지휘한 백선엽 장군은 한국은 물론, 미군에게도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장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현충원 안장을 두고 백선엽 장군에 관한 달갑지 않은 부정적인 논란이 일고 있다. 김홍걸 국회의원을 비롯한 일부 여권에서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간도특설대’의 복무전력으로, 친일행적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객관적으로 인물을 평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6.25 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의 탁월한 작전술이 없었더라면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보자,
‘다부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쟁의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만주군 ‘간도특설대’ 근무 하나로(하지만 그가 독립군과 전투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 현충원에 가서는 안 되는 주장은 즉시, 철회함이 마땅하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칭찬과 관용을 멀리하고 남을 폄하하는 얄궂은 양상으로 가는지 참으로 한심스럽다.
선진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남북전쟁은 1861년 4월, 노예제도를 둘러싸고 북부와 남부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로버트 에드워드리 장군은 남북전쟁때 남부군의 총사령관으로 북부군과 싸우다 최후 전투에서 패전했으나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략가로 평가 받는 지휘관 이였다.
전쟁에서 비록 패배했으나 에드워드리 장군의 탁월한 지휘관으로서 군인정신을 기리기 위한 공적비를 북부군측에서 세워주었다. 이와는 달리 6.25 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백선엽 대장을 비하하는 우리 사회의 풍조와는 대조가 되지 않는가? 남의 미약한 약점을 들춰내어 비하는 일은 이제는 근절되어야 한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빛나는 전공을 세운 맥아더 장군은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고, 노병 백선엽 장군은 ‘나는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여한 없이 적과 싸웠노라’는 말을 남겼다.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 당시, 조국인 대한민국을 지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은 부분이 있는 만큼 일부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 해도 대국민적 화합을 위해서라도 현충원으로 모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김한기
전) 민주평통구미시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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