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출신 최고의 항일운동가로 평가받는 왕산 허위 (1855- 1908) 선생의 후손들이 영구 귀국이 표면화 되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범시민운동차원의 지원노력이 가시화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들어 허위 후손 돕기 범시민운동이 필요성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것은 지난 4일 한명숙 총리의 특별초청으로 귀국한 왕산허위의 손녀 허로자(80. 우즈베키스탄 거주)여사가 영구 귀국을 희망했고, 16일 한총리가 이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정부차원의 긍정적인 검토를 약속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허 여사의 영구 귀국을 위한 특별귀화 방안을 마련하고, 귀화할 경우 4천만원으 정착금을 지원키로 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정부는 키르키스스탄에서 살던 왕산의 또 다른 손자 허게오르기(80), 블라드슬라부(55) 형제등 일가족 8명에 대해 특별귀화 조치를 했다.
그러나 귀화한 이들이 정부차원의 정착금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가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데다 한국사정까지 알수 없어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이들이 생계를 잇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뜻있는 구미시민들과 시민, 사회단체, 왕산 기념사업회 추진위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왕산 후손을 구미시에 정주토록하고 아울러 생계 보장을 위한 범시민운동의 전개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시차원에서도 이들이 구미로 귀향해 정착할수 있도록하는 예산을, 왕산기념사업과 맞물려 진행시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1905년 일본이 을사조약을 체결하자 왕산은 1907년 전국 의병장들이 중심이 된 13도 연합의병창의군을 창설하고 한말의 항일의병장 중 최고지도자인 13도 연합 창의군 군사장이 되어 일제와 맞서 싸우다 체포됐다. 결국 왕산은 1908년 9월 27일 서대문 형무소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일제에 의해 처형되는 교수형 1호가 되어 비운을 맞아야만 했다.
왕산의 후손들이 고향에서 명맥을 잇지 못한 것은 왕산을 처형한 일제가 임오동에 살고 있는 일가족들을 탄압했고, 이를 피해 만주간도로 야반도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만주로 가서도 항일운동에 앞장서다가 일제에 쫓겼고, 형제들은 집시처럼 유랑했다. 하지만 조국이 해방을 맞았으나 이들 후손들은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1백년동안을 망명아닌 망명생활을 해야만 했다. 특히 왕산의 후손으로서 북만주에서 태어난 허도성 씨는 친일파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도 했다.
일제하의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향에서 망명아닌 망명생활을 해온 왕손 후손들의 눈물어린 소식들이 여론화되면서 구미시민들은 “ 영구 귀국하는 왕산 후손들이 고향인 구미에 정착토록하고 생계를 유지 할수 있도록 범시민운동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민의 도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시민들은 또 “ 조국 해방을 위해 일제와 맛서 싸운 독립운동이 죄아닌 죄가 되어 그 후손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수 없다면, 누가 애국심을 발휘하겠느냐.”며 “ 식어가는 애국심 고취를 위해서도 왕산 후손들의 구미정착 운동은 전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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