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또 하나의 신화(神話)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정작, 이 후보 본인은 자신이 처음으로 쓴 책에서 “신화는 없다”고 강조했지만 ‘샐러리맨의 신화’, ‘청계천 복원의 신화’에 이어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서 ‘한나라당 정권 재창출, 대선 승리’라는 새로운 신화 창조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이 후보는 지난 20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서 자신의 정치 인생 중 최고의 순간을 맞고 있으며 이 후보에 대한 한나라당 당원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날의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있기까지 ‘인간 이명박, 정치인 이명박’의 여정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릴 적 싫기만 했던 가난,
이제는 크나큰 재산
이 후보는 지난 1941년 12월 19일 일본 오사카의 미에현에서 출생했고 일본 패망뒤 귀국길 여객선이 대마도 인근 바다에서 침몰, 가족은 맨몸뚱이 하나로 고향 땅을 밟았다.
맨몸뚱이 하나로 시작된 포항의 쪽방생활에서 그가 들은 것은 배고파 우는 소리와 싸우는 소리였고 그가 주로 먹은 것은 술을 빚다 남은 술지게미였다.
이 시기에 이 후보는 중학교까지만 보내주겠다는 어머니를 어렵게 설득, 포항 동지상고 야간반에 진학, 낮엔 뻥튀기 장사와 과일 행상을 했다.
고교 졸업 후 빈손으로 상경한 뒤 청계천 책방에서 헌책을 얻어 독학으로 지난 1961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이태원 재래시장 환경미화원으로 학비를 벌며 학교를 다녔으며 1964년 고려대 상대 학생회장으로 6·3한일회담반대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샐러리맨의 성공신화(神話)
ⓒ 중부신문
학생운동의 경력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이 후보의 발목을 잡은 반면, 내성적인 이명박을 야심가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난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를 지원했으나 회사로부터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힘들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후보는 청와대에 편지로 선처를 호소 했으나 거절당하자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만나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길을 국가가 가로 막는다면 국가는 그 개인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것”이라며 설득, 입사에 성공했다.
입사 면접 당시 정주영 회장의 “건설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건설은 창조”라고 답한 이 후보는 입사 5년만에 이사, 10년만에 부사장, 12년만에 사장, 23년만에 최고의 자리인 회장에 올랐다.
이 후보는 골재 생산업체가 약속한 시한을 지키지 않자 불도저로 업체의 업무를 막아 청와대로부터 양보를 받아 낸 것, 신군부가 중공업 중복 투자를 쇄신하겠다며 현대에 자동차를 포기하고 발전설비를 택하라는 압력을 넣었지만 끝까지 도장을 찍지않아 무산시킨 것 등은 아직까지도 세인의 입에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또 다른 신화(神話) 창출을 위한 선택,
와신상담(臥薪嘗膽)
ⓒ 중부신문
이 후보는 지난 1992년 1월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섰다. 27년 동안 모셨던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국민당 창당을 결심하고 함께 할 것을 제안했지만 “현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를 들어 정중하게 거절하고 회사를 나왔다.
이 후보는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에 입당했다. “의리 때문에 맹목적으로 기업주를 따르는 것은 옳지 않으며 민자당을 택한 것은 사회에 이바지하며 뜻을 펼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는 정 회장이 창당한 국민당과 맞서지 않기 위해 전국구를 택했다.
그러나 이 후보의 정치인생은 초고속으로 기업체 CEO가 된 것처럼 그렇게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 1995년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패했고 서울 종로를 지역구로 출마한 15대 총선 당시 이종찬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 서울시장에 대한 꿈을 새롭게 펼칠 수도 있었지만 1998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마져 사퇴해야 했다.
이 후보는 의원직 사퇴이후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에서 1년간의 연수생활을 했고 서울로 돌아온 이 후보는 경선기간 내내 논란이 되었던 BBK 핵심 주역인 김경준씨와 동업해 인터넷 금융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삼세판’, 이 후보는 95년, 98년에 이어 2002년 세 번째 도전 끝에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서울시장으로 이 후보는 ‘청계천 복원 사업’, ‘대중교통체계 개편’, ‘서울 숲 조성’ 등을 강력하게 추진, 성공한 것이 오늘날의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은 대부분이 불가능하다고 말렸다. 청계천 복원 사업 계획이 발표되자 청계천 노점상들은 격렬한 반대 시위를 펼쳤다. 당시 시장인 이 후보와 상인담당팀은 4천2백번 이상 상인들을 만나 결국, 협조를 얻어냈고 2년이라는 짧은 공사기간만에 완벽하게 사업을 마무리했다.
2005년 10월 복원된 청계천은 서울 시민은 물론, 지방 관관객, 외국 관광객들을 끌어 모아 “청계천 신드롬”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또, 서울 시내의 대중 교통흐름체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대중교통체계 개편” 역시, 이명박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을 정도로 서울시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
어쩌면 지금까지 이 후보가 거쳐 왔던 각종 고난과 역경, 영광은 앞으로 전개될 또 다른 미래와 비교한다면 영양분이 풍부한 밑거름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하나의 일화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다 사라질 수 있다.
비록, 지난 19일 실시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또 하나의 큰 산인 박근혜 후보를 누르고 최종 주자로 확정되었다고 오는 12월 대선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이 후보는 무엇보다 이번 경선을 통해 깊어진 당원들의 화합을 이끌어 내야 하고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던 각종 의혹을 확실하게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후보 수락연설에서 밝힌 것처럼 “본인을 지지했던, 지지 하지 않았든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마음에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 이번 후보 경선에서 이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지만 당원 중심의 선거인단에서 박 후보에 졌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김차옥 기자 cha-ok@hanmail.net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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