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고 있다. 성탄과 연말연시를 맞으면서 거리에는 구세군의 자선남비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우리의 잠든 영혼을 깨우고 있다.
해마다 이 때쯤이면 우리는 겨울나무들에게서 옷 벗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교목은 관목에게 관목은 그 아래 엎드린 키 낮고 연약한 풀섶에 자신의 잎을 떨궈 자기보다 낮은 곳에 사는 푸나무의 시린 맨살을 덮어주고 있다. 그 잎들은 낮은 곳에 사는 동료의 이불이 되었다가 마침내 썩어서 그들을 키워 주는 양분이 된다.
연말연시를 맞아 밀려오고 밀려가는 인파가 흥청거리고 있다. 구세군의 종소리가 떨어지는 차디찬 길가 낮은 곳에는 동전통을 앞에 놓고 엎드린 사람이 있다.
어느 철학자는 “거지에게 적선을 하는 것은 그 거지로 하여금 빌어먹는 타성이 붙게 하는 해악 행위이다.”고 하였다. 얼핏 들으면 수긍이 가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나 그것은 저들의 절박한 자리를 생각하지 못한 말장난일 뿐이다.
높게 걷는 사람들은 마땅히 자기의 잎을 떨궈 낮은 곳에 엎드린 사람들을 덮어 주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교목의 자리에 선 사람들, 많은 잎을 가진 사람들은 그 만큼 덮어줄 범위도 무한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우리는 노블레스라 한다.
노블레스란 본래 프랑스에서 귀족이나 고귀한 신분의 사람을 일컫던 말이다. 1347년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벌였던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에서 프랑스 최북단 도시 깔레가 함락될 운명에 처했을 때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내어놓은 항복 조건에 따라 깔레의 명예를 위해 죽음을 자처했던 쌩 피에르를 비롯한 깔레의 대표 귀족 7인이 그 장본인들이다. 평소에 조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 누렸던 그들은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살신(殺身)의 모범을 보였던 것이다.
이처럼 노블레스에게는 오블리주가 필요하다. 오블리주란 도덕성,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가진 자, 특권층의 도덕적 의무’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사회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천한 분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다. 이순신, 안중근, 윤봉길, 일제 말에 나라의 안녕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바쳤던 독립투사들, 고귀한 이름들은 얼마든지 들 수가 있다.
지금은 우리 사회에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우리가 대선(大選) 결과나 성탄이나 연말연시의 기분에 들떠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을 때에도 우리 주변 낮은 곳에서는 가스 비를 아끼기 위해 밸브를 잠가놓고 새우잠을 자는 사람, 길거리에 신문지를 깔고 잠을 청하는 이웃이 있음을 기억하자.
인파가 흥청거리는 옆에 겨울나무는 말없이 자신의 잎을 떨궈 키 낮은 푸나무의 시린 살을 덮어주고 있다. 비록 내가 이 땅에 노블레스가 아니더라도 지금은 어느 때보다 나눔, 사랑, 베풂의 오블리주 정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차옥 기자 cha-ok@hanmail.net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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