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목면 남계리 산21번지에 위치한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1982.8.4 지정) “신유장군유적지”의 주간개방이 필요하며 관리사무소 운영과 확대된 관광문화인프라 구축의 적용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유장군 유적지는 숭무사, 존성재, 북정문, 선위문, 비각으로 구성돼 있으며 화재염려로 인한 출입통제에서도 북정문 개방 등 최소한의 유연성을 확보해 유적지를 방문한 내방객의 헛걸음을 방지하여야 한다.
신유장군 유적지 주위로 약목면 복지회관과 체육시설, 영암산,서진산,비룡산 등 등산로 입구가 있어 지역주민과 외지인의 왕래가 많아 학생 및 일반인들의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관광문화인프라구축의 중심의 유적지가 위치해 있다.
유적지 진입구간은 남계교∼복지회관을 연결하는 군도 21호선 인도 및 가로등 설치 준공행사가 지난해 완료돼 교통근접성이 확보됐으며 주간개방과 관리강화로 주요유적지로 새롭게 탄생시키기 위한 민·관 합동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칠곡군청 새마을과 관광문화재 담당 직원은 “신유장군 유적지의 하자·보수 관계에만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유장군 후손인 신모씨는 “현재 관리인이 없는 상태며 10년전에는 군직원 2명이 배치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공무원 구조조정으로 인력배치가 힘들면 공익요원 배치도 검토할 수 있으며 면사무소와 문중관계인 연락처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설치해 유연적인 개방성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군에서는 올해 하자보수 예산으로 5,000만원을 책정했으며 관리요원확보를 도에 요구해 놓은 상태다.
신유장군 문중에서도 평소 하자보수에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유적지로서의 가치보존을 희망하고 있다.
신유장군 유적지
조선 효종 때의 무장 신유(1619∼1680)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장군의 자는 경숙, 호는 봉하, 본관은 평산으로 광해군 11년(1619)에 약목면 복성리 증호조참판 신우덕의 4남으로 출생해 인조23년(1645) 27세에 무과에 급제, 선전관 등 여러 무직을 거쳐 효종 7년(1656) 12월 함경북도 혜산첨사로 부임 후 병마우후로 있을때 청나라의 요청을 받아 효종 9년(1658) 원군을 이끌고 만주에 원정해 흑룡강 부근에서 스테파노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을 전멸시킨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나선정벌이라 부르며 장군은 이 원정의 전말을 북정일기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다.
4년 21일간의 전투기록을 담은 북정일기는 17세기 우리나라와 러시아 사이에 최초 접촉에 대한 현지 사령관의 기록으로서 세계적인 사료로 인정되고 있다.
장군은 숙종6년(1680) 향년 62세로 생을 마감하니 왕이 예관을 보내 치제케 하였으며 왕의 사제문에는 장군의 흑룡강 출병과 승전을 높이 찬양하고 있다.
외삼문인 북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면 신도비각과 존성제 건물이 나오고 내삼문인 선위문을 지나면 신유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된 사당인 숭무사가 있다.
박태정 기자 ahty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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