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간디가 있었다면, 조선반도에는 이상이 있었다.
시인 이상이 동경거리를 배회하다 깡패를 만났다. 시비가 붙은 것이다. 우람한 체격의 사나이가 시비를 걸어오자 폐결핵으로 생을 오락가락하던 시인 이상은 싸워보자는 우람한 사나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싸우나 마나 내가 지는 것은 뻔한 일이다. 싸울 필요가 있나.”
사나이는 멀쑥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상은 인간의 다양한 삶에 대한 묘사를 시라는 형식을 통해 터치해 나갔고, 그 글들은 우리가 어렵던 50-70년대, 비극적인 삶에 대해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영양분 역할을 했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영국은 인도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결국 그들은 이렇게 한탄을 했다.“ 인도는 점령했지만 인도를 삼키지는 못했다. 간디를 굴복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폭력주의자 간디는 인도의 상징이자, 전세계 평화의 상징이었다. 간디가 있는 인도는 독립국이었고, 간디를 이기지 못하면 인도를 삼킬수 없었던 것이 영국이었다.
유명한 시인 타고르는 간디에게 “ 마하트마”라는 호를 선물했다. 인도말로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 정도로 풀이되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미국이 폭력으로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이라크를 정복하지는 못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침공하지만 팔레스타인을 정복하지는 못했다.
북한에서 용천역 사태가 발생해 수천의 우리 동포들이 죽어간다고 한다. 문제는 살릴수도 있는데 죽여간다는 것이다. 남쪽에서 의료진 지원을 간구해도 그들은 부정적이다. 이는 권력 존치의 자존의 아니라 아집이다.김정일이가 때를 거른적이 있나, 매를 맞아 본 적이 있나. 김정일의 권력유지 때문에 무고한 동포들이 죽어간다면 이는 생명에 대한 엄연한 도전이다.
폭력은 죽음이요, 비폭력은 평화다, 사랑에 대한 무한한 자기 희생인 것이다. 사회주의로 겉포장한 김정일의 정책을 회의하지 않을수 없으며, 자국의 이익과 패권주의를 꿈꾸는 미 부시 정부에 대해 회의를 품지 않을수 없다. 오는 12월 선거를 통해 미 국민은 부시를 심판할 것이고, 양심적인 북한의 행동하는 지식인들은 머지 않아 김정일을 심판할 것이다.
인도의 간디, 한국의 시인 이상같은 평화주의자들이 대중화 되고 있다는 점을 전쟁광이나 폭력주의자들은 가슴 깊이 되새겨야만 한다.
관리자 기자 seok@ikwb.co.kr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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