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적은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 학자이며 문신이었던 검간(黔澗) 조정(趙靖, 1555∼1636)의 종손가(宗孫家) 고문서로 교지(敎旨) 1매와 시권(詩卷) 2매이다.
조정의 자(字)는 안중(安仲), 호는 검간,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김성일(金誠一)과 정구(鄭逑)의 문신이었으며, 임진왜란이 터지자 의병을 무아 활동하였고, 1596년(선조 29년)에는 사마시에, 2년 후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 좌랑, 사헌부 감찰, 대구 판관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죽은 후에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문과 급제 교지는 1605년(선조 36) 4월 2일에 발급한 것으로 당시 호조 좌랑 조정이 문과 병과 제21인으로 급제하였음을 증명하는 문서이다.
1601년(선조 34) 2월의 시권은 당시 광흥창(廣興倉) 부봉사(副奉事)였던 조정의 시지(試紙)이다. 앞부분에 거자(擧子, 응시자) 조정의 신분 등을 적은 곳에 ‘연사십육세(年四十六歲)’라 적혀 있고, 다음 ‘신축이월근봉(辛丑二月謹封)’이라 적혀 있는데 이 신축은 1601년(선조 34)에 해당한다. 조정의 연보에는 신축년에 47세, 경자년에 46세로 기록되어 있다. 이 시권은 무슨 시험에 응시한 답안지인지 미상이나 ‘차중(次中)’, ‘삼지십육(三之十六, 병과 16등)’의 성적으로 입격하였다. 단 응시자가 제출한 답안지를 분류 정리하는 관원인 지동관(枝同官)의 ‘지동(枝同)’이란 확인 기록이 없으며, 신분 등을 쓴 부분도 자르지 않았다.
문과급제 시권은 1605년(선조 38) 3월에 치른 증광문과전시(增廣文科殿試)의 시지로서 병과 제이십일인으로 급제하였다. 과거 시험 답안지 작성에서부터 등제, 채점 성적에 이르기까지 제반 형식이 갖추어진 문서로서 조선 선조 때의 과거제도 연구의 자료가 된다. ◆ 자료제공 : 구미문화원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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