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에는 처처에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라는 묵시(?示)를 실감하는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재앙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섣불리 판단과 정죄의 눈을 뜨기 전에 감사와 동행의 가슴으로 재앙의 뒤에 숨은 신의 뜻을 살피는 삶의 자세가 절실한 때라고 생각해 봅니다.
와중(渦中)에서도 어김없이 사월이 왔습니다. 사월은 일년 내내 피는 꽃들의 대부분이 피고 지는 달입니다. T.S. Eliot는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 읊었습니다. 개념을 달리하여 정말 사월은 잔인할 정도로 아름다운 달이라는 말로 바꿔 봅니다.
삼월 말부터 사월 초입에서 산수유, 개나리, 매화들이 일어서는가 싶을 때, 뒤 이어 곧장 복숭아, 살구, 목련, 벚꽃들이 황막(荒漠)하던 허공에 꽃등을 달기 시작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헤일 수 없는 산꽃 들꽃들이 저마다의 향기와 색깔로 황량(荒凉)했던 천지를 눈물 나도록 아름답게 치장합니다. 사월의 바람은 세상의 색깔을 하루가 다르게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꽃을 보며 생각합니다. 사람은 왜 꽃을 좋아하는가? 꽃 같은 삶은 어떤 삶인가? 어떻게 하면 꽃처럼 살 수 있는 것인가?
꽃은 자태가 아름답습니다. 고혹적인 향기를 발합니다. 겨우내 다리 옹크리고 떨다가도 화사한 햇살이 참빗살로 내려서면 바로 눈을 뜨는 순명(順命)의 자세를 가졌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꽃처럼 살다 간 분도 적지 아니하고, 살아가고 있는 분 또한 허다합니다.
한 생을 아프리카 수단, 톤즈 지방의 행복을 위해 뜨겁게 살다가 붉은 동백처럼 통꽃으로 뚝 떨어진 이태석 신부, 쓰던 안경 비롯한 유품 몇 점 남긴 채 훌훌히 떠나신 김수환 추기경, 한국 교회의 초석을 놓으시면서 백합처럼 향기롭게 살다 가신 한경직 목사님,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우리 곁을 떠난 법정 스님, 그 밖에도 문학 작품을 통하여, 또는 행적을 통하여 우리의 가슴을 따듯하게 한, 비단 이 땅에 살면서 이름 석 자 구태여 남기지 않았어도 꽃처럼 아름답게 살다 가신, 살고 계신 분들이 있어 세상은 그래도 아름다운가 봅니다.
잔인할 정도로 아름다운 계절 사월을 맞으면서 지금은 나만의 아름다움, 나만의 향기는 무엇인지 돌아볼 때입니다.
이 땅에 와서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았지만 미안하게도 아직 제 자신만의 향기와 아름다움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슴은 아직도 1,2월 찬 바람이 가득하여 봉오리가 피어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제 속에도 겨울의 뒤꿈치를 볼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면서 겸허하게 무릎을 꿇어 봅니다.
올해도 사월을 시작합니다. 천지에 가득한 꽃들의 향연을 바라보면서 ‘인생을 꽃처럼’ 살아 보자고 다시 뇌어 봅니다.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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