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들을 젖히며 유람선은 스톡홀롬을 행해 유유히 미끄러져 갔다.
아름다운 별장과 수많은 요트가 정박해 있는 작은 섬들은 수려한 풍광에 어우러져 마치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를 지향하는 스웨덴은 노벨상으로 우리와 더욱 친숙한 나라다.스웨덴은 또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지상 최고의 복지국가이기도 하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의 발달에 따른 사회보장제도에 힘입어 지금과 같은 복지의 기틀은 현 사회민주당 내각에 의해 추진되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사회보장제도 실현의 이면에는 국민 평균소득액의 약 4%, 간접세와 사회보험료를 합해 50%에 가까운 세금을 충실히 내는 성실한 납세의 의무가 자리잡고 있었다. 대단한 조세부담이 아닐수 없다. 이처럼 부여된 납세의 의무를 철저히 지키는 대신 반대급부로 국민들은 교육, 의료, 실업보험, 연금, 노인복지등은 물론 공공 서비스까지 완전무료의 혜택을 받는다. 노후 또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개인적인 저축을 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정도로 정부가 국가재정의 30%를 국민복지를 위해 환원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주민의 문화생활의 다양성과 질적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열정적이어서 균형적인 문화, 복지 정책을 만들고, 실천하는데 정부는 눈코뜰새가 없다고 했다.
실례로 인구 80만의 스톡홀롬시 청사를 방문했을 때 시청 공무원이 5만5천명이라고 해서 당장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이중 80% 이상이 복지관련 공무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과연 복지국가답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놀라움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스톡홀롬의 대표적인 양로원인 필드레드를 방문했을때는 왜 스웨덴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복지국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지를 실감할수 있었다. 개인의 요구에 따라 제공되는 15평, 22평 규모의 개인아파트,전문 복지사의 관찰과 판단 아래 제공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은 물론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상주 근무하는 양로원 시설은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 격세지감이었다. 방문단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82세 벤터할아버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독신이자 장애인이었지만 어두운 구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었으니 말이다. 전체 양로원의 복지가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우리의 아픈 상처도 있었다. 스웨덴에 살고 있는 약1천명의 교민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자 같은 동포애를 실감케해주는 약 1만명의 입양아들이 있다는 사실은 결코 자랑스럽지 않는 현실이었다. 이때문인지 다음행선지로 향하는 필자의 심정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행선지인 노르웨이로 가는 고속열차는 움직이는 독서실을 연상케할 만큼 승객 모두가 독서를 하고 있었다. 선진국에 비해 1인당 독서률이 3-4배나 뒤쳐진 우리와는 판이한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정류장 대합실에 있는 서점에는 책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노벨의 유언에 따라 노벨 평화상 시상만큼은 스톡홀롬이 아닌 오슬로에서 한다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도착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3국이 엇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마 지형적인 조건 때문이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보면서 8박9일의 북유럽 마지막 여행지인 프로그너 공원을 돌아보았다. 사진을 통해 이미 익숙한 세계최대의 조각공원에는 청동과 화강암의 재료를 활용해 인생의 희비를 그려낸 수백개의 조각상과 군상들이 즐비했다. 이 예술품들은 조각가의 애절한 인생과 정열, 비지땀을 쏟고 또 쏟아부었을 넘치는 창작성을 엿보이게 했다.
조각상을 배경으로 석양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저녁노을이 어둠속으로 사라지면 8박9일의 북유럽 연수일정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무거운 마음으로 결심한 연수였다. 구미시의 발전과 의정발전에 접목해야 할 무엇인가를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출발할때의 책임감에 필자는 어느정도 충실했었는가. 이국 땅에서 보낸 마지막 밤에는 이러한 부담때문이어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8박9일동안 보낸 스칸디나 반도 3국이라는 여행지는 필자에게 또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던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스칸디나 반도는 우리가 꿈꾸는 인간 중심, 복지 중심의 일단을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잘 가꾸고, 다듬어진 수려한 환경을 터전으로 펼쳐지는 복지 정책, 남녀의 불평등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인간존중의 정책, 상호 부조형 경제정책의 스크린들이었고, 가히 경이적이었다.
수려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문화재를 우선시하는 도시구조는 과거와 현재, 물질과 문화의 조화가 인간의 삶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1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식의 신도시 도로망 건설과 3백여 년 전에 8차선 도로를 개설한 모스크바의 선견지명은 간과할 일이 아니었다,
정부와 유관기관은 물론 국민 한사람까지도 사익보다 공익을 위해 부여된 임무에 충실하는 가운데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의 기적을 이룬 모습은 부러운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 50%에 가까운 납세의 의무와 국가재정의 30%를 국민복지 예산으로 편성하려는 정부의 숨은 노력도 인상적이었다. 책임을 다하고 권리를 행사하는 이들 정의 사회는 아름다움 그대로였다.
고급인력 창출을 최우선의 국가과제로 꼽고 있는 핀란드의 장기적인 교육정책과 58%의 여성사회참여율과 여성이 맡고 있는 대통령, 국회의장, 헬싱키 시장의 현실도 깊은 생각을 하게 했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세계들이 드라마처럼 전개되고 있는 스칸디나반도를 뒤로한채 귀국행 여객기에 오른 필자는 8박9일동안 체감한 소재들을 구미시 발전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의지를 가다듬는 시간을 갖기 위해 눈을감았다.
필자는 구미시의회 전부의장으로 구미1대학 아동복지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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