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은 천생산(해발 407m) 정상 주위 8∼9부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다. 인근의 금오산성과 가산산성과 더불어 영남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산성이다.
비슷한 형태인 두 개의 산봉우리를 이용하여 내성과 외성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서쪽은 자연절벽을 이용하였고, 북, 동, 남쪽은 정상 주위를 따라 테뫼식으로 축조하였다. 내성의 길이는 약 1,300m, 외성은 약 1,320m 정도이며, 이 중 인위적인 성벽은 812m이다.
외성은 계곡 등 경사가 급한 일부 구간에는 1∼2m 높이로 작은 자연 할석을 8∼12단으로 쌓아 흙의 유실과 계곡으로의 침입을 방지하였고, 동쪽 일부 구간에는 협축식 석성 도 남아 있으나 북서의 자연절벽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은 삭토법에 의한 토성으로 만들어져 있다.
마을에서는 외성을 ‘외밭’으로 부르고 있는데, 전투시 내성과 공조하는 역할도 수행했겠지만 주로 장기전이 행해졌을 때 내성에 공급하는 농작물의 경작, 군마의 방목, 군사 훈련장 등으로 이용된 보조성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 같다.
내성은 지형에 따라 협축법과 편축법이 고루 사용되었으며, 외성과 같이 북서간의 자연절벽에는 대부분 성벽이 없으나 계곡이 열러 다소 방비가 취약한 곳에는 구간별로 석성을 축소하여 보강하고 있다.
인근 주민의 피난 및 전투 등의 목적을 가지고 축조된 것으로 군사 및 군마를 위한 우물, 못, 건물, 장대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성벽은 부근 일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재를 장방형으로 다듬어 사용하였다. 기단석은 장방형의 큰돌을 쌓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성돌을 쌓아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일부 성벽 사이사이의 공간에는 잔돌로 틈새를 매웠다.
통로였던 북문과 동문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개구부의 형태는 평거식으로 문비를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벽의 철형 돌출부와 능선의 교차지점, 평탄한 대지상에는 치, 포루, 망루 장대 등이 있었다.
성밖에는 군기고지와 승병이 주둔했던 만지암지가 있으며, 성내에는 연지암, 천인사 등의 작은 암자터도 남아 있다.
◆ 자료제공 : 구미문화원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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