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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최중근의 세상 내시경] 무관심 사회를 깨운 분노의 `도가니\'
최중근 원장
탑정형외과
2011년 10월 18일(화) 01:37 [경북중부신문]
 

ⓒ 중부신문
 2011년 가을, 대한민국이 ‘도가니’에 빠졌다.
 2002년 월드컵의 기억처럼 열광의 도가니, 감격의 도가니라면 좋으련만 지금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분노의 도가니, 경악의 도가니다.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 아이들의 성폭행 사건 실화를 다룬 영화
 사람들은 12명의 장애아동들이 갇힌 공간에서, 그것도 교직원들로부터 수년 간 성폭행을 당했다는 끔찍한 진실 앞에 분노하며 연일 입소문을 내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물 짜내게 만드는 슬픈 얘기도, 가슴 먹먹하고 답답해지는 불편한 스토리도 싫어라∼하며 가능하면 가볍고 통쾌한 영화 쪽으로 눈길을 돌렸던 필자 역시 도대체 어떤 사건 이길래 라는 호기심 반, 왠지 봐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 반으로 관객대열에 동참한 걸 보면 반짝 흥행은 아닌 듯싶다.
 개봉한 지 6일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고 개봉 8일만에 손익분기점(BP)를 넘겼으며 지난 2009년에 발간돼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공지영의 동명 원작소설도 영화 흥행에 힘입어 또 다시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선두를 달리고 있다니 이 정도면 하반기 최대의 화제작이라 해도 손색없다.
 처음 영화기획 당시 이런 ‘불편’한 내용을 누가 찾겠냐며 걱정이 컸다는 제작사 측의 기우를 가뿐하게 날려버린 사건 중의 사건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 가 단지 화제성과 흥행으로만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과 성폭행 가해자가 버젓이 복직해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의 분노는 거대한 해일처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다.
 들끓는 여론에 경찰은 특별 수사팀을 꾸려 추가 수사에 착수했고 재수사와 가해자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인터넷 서명 운동도 나흘 만에 5만 명을 넘어섰으며, 해당 교육청은 학교를 자진 폐쇄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여성가족부와 다음 달 합동 조사단을 꾸려 전국의 모든 장애인 특수학교에 대해 전면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고, 정치권도 여야 할 것 없이 일명 ‘도가니 방지법’을 추진하는 등 장애인 인권 개선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모든 것이 영화 개봉 후 일주일이 채 안 돼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 동안 무수한 성폭력 사건이 이어졌지만 이처럼 국민적 공분 속에 근본대책을 촉구한 적은 없었다. 영화의 힘, 정말 대단하다. 그래서 한편으론 씁쓸하다.
 만약, 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그간 외면해 왔을 뿐 광주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의 ‘진실’은 변함이 없었고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도 벌써 수년째 진행돼 왔다.
 MBC 의 보도와 공지영 작가의 소설이 있었고 진상조사와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원회의 눈물겨운 투쟁도 계속 있어 왔다. 대책위원회가 242일간 농성을 하기도 했고 학생들이 66일간이나 등교를 거부하기도 했지만, 교육당국은 수수방관으로 일관했고 사법부의 판결은 가벼웠으며, 사회는 무관심 했다. 엄밀히 말해 정부나 정치권, 교육당국이 해야 할 일을 공지영 작가와 영화 제작진이 대신한 셈이다.
 일상(日常)인냥 무감했고 외면해왔던 우리사회의 ‘불편한 진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러웠고 오늘의 분노가 얼마나 늦었는지 절감했다. 아마, 다른 관객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반성과 자각이 지금 우리 사회를 깨우고 있는 셈이다.
 속 성범죄 사건들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특수한 상황, 특수한 사람들이 아닌 내 주변, 내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제 2, 제3의 가 나오지 않도록 이제야 말로 세상을 바꾸는 가시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어떤 중견 정치인이 페이스북에 자신도 “도가니 사건 청원에 서명했노라”는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정말 이번에는 냄비근성으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제도적 법적 장치로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남민정 기자  da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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