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은 영(英)· 정조(正祖) 시대의 실학자인 최광익이 둘째아들 승우의 살림집으로 정조 12년(1788)에 지었으나 그 형인 성우와 집을 바꾸었다. 원래 살던 쌍암고택에서 북쪽 언덕에 있다하여 북애고택이라 한다.
나지막한 언덕위에 ‘ㅁ자’ 형 안채와 ‘ㅡ자’ 형 중문간채가 ‘튼 ㅁ자’ 형을 이루고 동북향으로 않아 있다. 그 앞쪽에 ㅡ자형 사랑채가 따로 있다. 대문간채와 사당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안채는 안마당 정면에 3칸 안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건너방, 마루방, 안사랑방, 안사랑 대청이, 우측에는 찻방, 안방, 부엌, 통로문간이 뒤에서부터 앞으로 뻗어 각기 좌우익사를 이루고 있다. 3칸 안대청 뒷문 바깥쪽에는 반칸 크기의 툇마루가 들여져 있다. 대청 뒤쪽에 쪽마루를 시설하는 경우는 있으나 이처럼 툇마루를 깐 예는 흔치 않다. 좌우익사 안마당 쪽에 안대청과 연결된 2칸 길이의 쪽마루를 시설하였는데, 좌익사 안사랑방 부분만 한 단 높게게 하고 계자각난간으로 돋보이게 하였다.
안사랑 대청은 안마당쪽 북측면을 벽으로 막고 반대쪽 남측면을 개방하고, 중문간채 쪽에는 벽을 치고 두짝 울거미창을 달았다. 안사랑 대청과 안사랑방 사이에는 2분합 들문을 달아 필요시 두 공간을 트일 수 있게 했다. 안방 부엌 상부에는 다락이, 건너방 뒷벽에는 벽장이 마련되어 있다.
막돌 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운 납도리 장혀수장 홑처마집이다. 안대청이 있는 본채는 5량가이고 좌우익사는 3량가로, 안대청 상부 종량 위에는 제형판공을 세웠다.
중문간채는 좌로부터 중문간, 고방, 장고방, 마루, 고방, 헛간을 차례로 3량가 민도리 홀처마집이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겹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죄측반인 田자형에는 앞쪽 2칸에 사랑방을 두고 그 뒤쪽 좌우에 각기 1칸씩의 마루방과 온돌방을 놓았으며, 우측방인 田자형에는 뒤로 1/3칸 정도 물린 앞쪽 2칸에 사랑대청을 두고 그 뒤쪽에 마루방을 놓았다.
2칸 마루방 바닥이 사랑대청 바닥보다 한 단 높다. 사랑대청과 마루방, 사랑대청과 사랑방 사이에는 4분합 들문을, 사랑방과 뒤편 온돌방 사이에는 4분합 여닫이문을 달았다. 장대석쌓기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사랑대청 정면 두 기둥만 원주를 세운 5량가 홑처마 팔작지붕집이다. 기둥 상부에는 안쪽을 초각한 보아지를 끼워 주두를 얹고 창방 위에는 소로를 놓았다.
사랑대청 상부 대량 위에는 충량을 걸치고 그 위에 외기반자를 꾸몄다.
◆ 자료제공 : 구미문화원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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