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은 「교남지」등의 기록을 통해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에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 인동향교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1601년(선조34)에 안태동의 옥산 북쪽으로 옮겼다.
그러나 지형이 좋지 않다 하여, 1634(인조 12)에 옥산 서쪽 인의동으로 옮겼다. 도심 확장으로 1988년에 현위치로 옮겼다.
1985년 지정 당시 서향한 대지 위에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만이 동일축선상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이건 후에는 외삼문 저면 우측에는 관리사와 사주문을, 명륜당 앞에는 동 · 서재를 중건하여 그 모습을 일신하게 되었다.
대성전은 장대석(원래는 자연석 허튼층 쌓기)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모두 원주를 사용하였다. 주상에는 주심포계의 외삼출목 오포작으로 결조하였는데, 쇠서의 형태는 단부가 위쪽으로 치켜오른 앙서형이다. 전면에 퇴칸을 두고 내부는 통칸으로 처리한 전면퇴칸형식인데, 정면의 문비는 어칸에만 쌍여닫이판장문을 설치하고 양협칸에는 외여닫이 판장문을 달았으며, 문틀의 상부에는 각 칸마다 격자고정창을 설치하였다. 2고주 5량가인데, 대량 위에는 4분변작하여 동자주를 세웠으며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하였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인데, 평면은 어칸 3칸을 우물마루로 꾸미고 좌우측칸에는 전면에 퇴칸을 둔 온돌방을 두었다. ‘ㅡ’자형 평면 위에 특이하게 ‘I’자형의 지붕을 올려 상부가구는 다소 복잡하게 되었다. 대청의 상부는 5량가이고 양퇴칸의 상부는 3량가를 이루고 있는데, 대청 상부에 결조된 오량구조의 중도리가 연장되어 양협칸의 마룻도리와 결합되게 하였다. 주상에는 정면과 배면에만 초익공을 설치하였는데 익곡의 형상은 선이 날카롭게 뻗은 수서형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 10철, 중국 송나라 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셔 놓고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린다.
◆ 자료제공 : 구미문화원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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