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발이’를 사전에서 찾으면 “신이 없어 마른날에도 나막신을 신는다.”는 뜻으로, 가난한 선비를 일컫는 말이다. 갈아 신을 신이 없어 마른날에도 딸그락거리며 나막신을 신을지언정 손수 짚신을 삼거나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소신이 분명해서 남에게 쉽게 휘둘리지 않으며,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뒤돌아보지 않고 과감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사람이다.
그 자리가 설령 권력과 부(富)가 약속되어 있고 남이 우러러보는 자리라 하더라도 자신의 소신을 꺾어야 하는 자리라면 전혀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나는 사람이다.
올해는 4.11 총선과 12.19 대선의 두 가지 큰 선거를 앞두고 신년 벽두부터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IT시대답게 우리 같은 서민들의 휴대 전화에도 뜻을 펼치고자 하는 잠룡(潛龍)들의 자기선전 문자들이 성가실 만큼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대선은 아직 상당한 시간이 있어 언론에서의 관심사가 되어 있을 뿐 직접적인 선거 운동은 펼치지 않고 있지만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이들은 이미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총선에 임하는 정당과 인물들을 바라보면 문득 딸깍발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딸깍발이는 우선 가난한 군상(群像)이다. 신이 없어 마르나 지나 나막신 하나로 딸그락거리며 다녀야 하고, 겨울이 오면 땔감이 없어 뼈마디에서 소리가 나더라도 “요 괘씸한 추위란 놈 내년 봄이면 보자.”라고 오기를 부릴지언정 항복하지는 않는 기개가 있다. 이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더라도 겻불은 안 쬔다는 지조, 곧장 혀를 물고 죽더라도 재물을 알아서는 안 된다는 청렴개결(淸廉介潔), 仁과 義를 추구하며 살다가 그를 위해 죽는 것을 떳떳하게 생각하는 대쪽 같은 성품이 딸깍발이 정신이다.(이희승의 수필 중에서)
오늘의 선거판, 또는 선거에서 이긴 집단들을 눈여겨 살펴보면 겉모양은 딸깍발이 흉내를 내는 사람도 있으나 속모양은 대부분이 춘향전의 변 사또에 가까운 모습들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발분망식(發憤忘食)하고 있다 하나 그 실은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하여 밤잠을 자지 않는다.
그들은 나막신 대신에 번들거리는 승용차와 가죽구두를, 폐포파립(弊袍破笠) 대신에 혀도 잘 돌리기 어려운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입고, 가끔씩은 한 끼에 수십만 원의 식사, 하루 저녁에 수백만 원의 술자리도 거리낌 없이 가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더러 들통이 나면 ‘나는 모르는 일’, ‘잘 기억에 나지 않는 일’이라고 꼬리를 뺀다.
구태여 옛날로 돌아가 인의(仁義)를 추구하는 모습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또는 자기들의 이념이나 가치를 지켜가며 정당 활동 하는 모습까지도 바라지는 않더라도, 입만 열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국민의 귀를 따갑게 하는 것까지도 차치(且置)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그들의 봉이 되고 있는 국민들이 최소한도로 바라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당선되어 금배지를 단 뒤에 꼭 해야 할 첫째는 국민의 눈앞에서 싸움질하지 말 것, 둘째는 부정부패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말 것, 셋째는 적어도 국익과 국가 안보 앞에서는 꼴사납게 싸우지 말고 하나가 되는 대승적(大乘的) 모습을 보여줄 것, 넷째는 다른 편의 눈에 든 가시를 나무라기 전에 자신의 눈에 든 들보를 먼저 제거하여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지 않도록 최선의 모습을 보여줄 것 등의 몇 가지만 지키더라도 국민은 그런 일꾼을 가리어 몇 번이고 환영하며 기꺼이 표를 던져 줄 것이다.
IT시대에 살면서 무슨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를 하느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IT시대일지라도 근본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 성정의 기본은 변함이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딸깍발이 정신을 꺼내어 보는 것이다.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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