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향교는 조선 초기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나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1600년(선소 33)에 부사 김용이 대성전과 동 · 서무를, 1623년 (인조 1)에 부사 심륜이 명륜당, 동·서재, 남루. 교관아, 전사청, 주고 등을 새로 지었으며 명륜당이 앞에, 사당인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비봉산 기슭 아래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듯 하다는 명당 자리에 정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경사가 심한 대지를 3단으로 조성하여 청아루,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을 동일축선상에 놓았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정면의 기단은 2벌대로 쌓은 후 갑석[덮개돌]을 둘렀으며 측면과 뒷면에는 막돌쌓기로 하였다. 기단 위에는 원좌가 있는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는데, 주상에는 외1출목 이익공으로 장식하였다. 전면에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둔 전면퇴칸형식인데 정면의 칸살 구성은 어칸을 측칸보다 좁게 한 특이한 형태이다.
양봉과 소로가 종량을 받고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운 2고주 5량가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막돌쌓기한 기단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으며, 주상에는 이익공으로 장식하였다. 평면은 어칸 3칸을 우물마루로 꾸미고 양 퇴칸에는 전면에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둔 온돌방을 두었다. 5량가인데, 대량 위에는 소로를 얹어 양봉과 첨차가 종량을 받았으며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웠다.
청아루는 ‘ㄷ’ 자형의 평면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전면은 2층 누각으로 되어있고 후면은 명륜당 마당으로 연결되어 있다. 2층은 7칸에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양 퇴칸에는 벽을 설치하여 마루방으로 꾸몄다. 마루방의 뒤로는 1칸씩의 온돌방이 돌출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동·서재의 용도를 겸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 자료제공 : 구미문화원
남민정 기자 day@nate.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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