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8월 10일 허위는 의정부참찬에 임명되었다. 이는 관리로서의 등급이 올라간 것이다.
이 시기 재야유생으로 중앙에까지 명성을 날렸던 황현에 의하면 “고종의 총애가 날로 높아져서 참찬을 재수하고, 또 거처할 집까지 하사하였다” 한다.
당시 신문에서도 “전설을 문한 측 참잔 허위씨는 본래 가빈하여 재경다년에 여관에서 유련하더니 이 말이 대내에 입철하였던지 자상으로 허씨에게 매옥전 8만량을 특사하옵셨더라”고 보도하였다.
그와 활동을 같이 하였던 전 중추원의관 이상천은 평리원판사로 임명되었다. 이때 허위는 국가의 폐단을 고칠 10가지 조목의 개혁안을 건의하였다. 이는 봉건적 구습을 청산하고 백성들이 풍요롭게 살기 위한 방책을 제시한 것이다.
첫째, 학교를 세워 인재를 기를 것, 그 재주가 우수한 자를 골라서 외국에 유학시킬 것
둘째, 군정을 닦아서 불시의 변에 대비할 것, 군사는 농사에서 나오고, 농사는 군사에서 나오는 것이니 봄 가을에 무술을 연습하고 출입하면서 농사꾼과 교환할 것.
셋째, 철도를 증설하고 전기를 시설하여 교통과 산업에 이바지할 것.
넷째, 연탄을 사용하여 산림을 보호 양성할 것.
다섯째, 건답에는 수차를 써서 물을 대도록 할 것.
여섯째,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고 못을 파서 물고기를 기르며, 또 육축을 기르도록 힘쓸 것.
일곱째, 해항세와 시장세를 날로 더하고 달로 증가시켜 장사꾼들에게도 공평한 이익을 얻도록 할 것.
여덟째, 우리나라 지폐는 폐단이 심해서 물가는 몹시 높고 화폐는 지극히 천하여 공사의 허다한 재용이 고르지 못한 즉, 은행을 설치하여 금 은 동전을 다시 통용시킬 것.
아홉째, 노비를 해방하고 적서를 구별하지 말 것.
열째, 관직으로 공사를 행하고, 실직 이외엔, 차함하는 일은 일체 없앨 것.
자료상 보이는 의정부 참찬 직책으로서 허위의 활동은 일본군 사령부를 방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8월말 허위는 일보군사령부 방문자리에서 철도역부 모집문제로 인한 피해를 거론하였다.
그는 역부를 강제로 모집하는 폐단 때문에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소요하기 때문에 스스로 원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일체 뽑지 말 것을 일본군사령부에서 각지 병참소에 전보하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신문에서는 일본군사령부에서도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자료제공: 구미 왕산기념관(465-6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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