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허위는 의병의 대일전에 다시 참전하면서 동시에 다수의 해산군인들을 수용하거나 이들과 연합전선을 형성하면서 전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해산군인 가운데서도 강화분견대 소속으로 일단의 동료들과 함께 봉기, 항일전을 벌이던 연기우 해산의병부대를 포섭한 것과 강원도 일대에서 독자적으로 활약하던 김규식 의병을 포섭한 것은 허위 의병부대의 전투력 향상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허위는 의병에 투신한 이후 경기도와 황해도, 그리고 강원도 등지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의병들을 포섭하여 휘하에 거느리거나 긴밀한 연합전선을 구축하면서 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고, 그 결과보다 효율적인 항일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인근지역의 의병부대화 긴밀한 상호연계하에 전개한 항일전이 바탕이 되어 결국 뒤이어 결성되는 전국의병의 연합체인 13도창의군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허위의 휘하에서 활동하였거나 유기적인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던 대표적인 의병장들의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허위의 의병투쟁과 긴밀한 상관성을 갖고 있던 의병부대로는 우선 이인영과 이은찬의병을 들 수 있다.
여주, 이천, 양평, 양주, 포천 등 경기도 일대와 원주 등 강원도도 서부지역일대에서 활동하던 이인영과 이은찬 의병은 경기도를 대표하는 의진 가운데 하나로 허위와 더불어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이들과의 연합은 곧 13창의군의 결성으로 그 결실을 거두게 된다.
해산군인 김규식도 허위의 휘하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의병장이었다. 경기도 양주 출신의 김규식은 부교 계급으로 육군연성학교에 근무하던 중 1906년 음력 10월 퇴관한 뒤 이듬해 광무황제 강제퇴위사건과 군대 강제해산 이후 의병에 투신하여 '허위씨 휘하에 제일 용맹 있는 장사’로 일반적으로 기록하였다. 황해도의 김수민 의병부대와도 상호 밀접한 협조하에 항일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평민의병장으로 유명한 김수민은 경기도 장단군 소남면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제 정보기록에 서도 의병에 투신한 이래 적망이 군의 내외에 걸처 으뜸이었다고 한다.
휘하에 1백여명 의 의병을 인솔하고 경기, 강원, 황해 3도를 전전하면서 일본군 수비대화 경찰서를 공격하였다.
그는 특히 전술에 능하고 군대응용 능력이 탁월하여 일제도 정보기록에서 “군술이 능하고 이합집산이 또한 교모하고 궁지에 몰린 때도 한 두 차례가 아니었으나 능히 빠져나가 지금도 부하를 곳곳에 흩어져 있게 하고 자기는 적은 부대의 장수로서 출몰 배회하므로 그 체포가 용이하지 않다”고 평가하였다.
◇ 자료제공: 구미 왕산기념관(465-6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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